이산가족상봉 후보자 선정 100대1 '바늘구멍'

시사주간 | 기사입력 2018/06/25 [14:48] | 트위터 아이콘 2,002,603

이산가족상봉 후보자 선정 100대1 '바늘구멍'

시사주간 | 입력 : 2018/06/2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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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봉자 100명 선정위해 후보자 500명 뽑아

 

[시사주간=장지환기자] 8월20~26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앞두고 상봉 예비후보자 추첨식이 25일 열렸다. 100대1의 확률 탓에 탈락한 이산가족들은 추첨 현장을 찾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4층 강당에서 '2018년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 예비후보자 추첨식'이 개최됐다. 상봉행사에 참석할 우리측 100명을 뽑기 위해 500명의 예비후보자를 뽑는 작업이다.

 이산가족이 5만7000여명이니 예비후보자 추첨 경쟁률은 100대1인 셈이다. 여기에 북측에 가족이 생존해 있어야 하니 현재 방식의 이산상봉은 행운이 동반되지 않고는 사실상 이뤄질 수 없다.
 
 추첨에 앞서 적십자사는 예비후보자 수를 기존 300명에서 500명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우리측과 북측 모두 이산가족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양측 모두 생존해있는 확률이 점차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적십자사는 설명했다.

 윤희수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이 추첨 방식을 설명했다. 윤 총장은 "90세 이상을 50% 배정하고 직계가족에 가중치를 부과한다"며 "최종후보자 100명은 본인의사와 북측 가족 생사를 확인해서 선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추첨을 위해 컴퓨터에 앉아 몇차례 클릭을 했다. 추첨은 9분 만에 마무리됐다. 박 회장은 "5만7000명이 기다리고 있는데 겨우 500명을 추첨한다. 5만7000여 이산가족의 한을 풀기에는 부족한 수"라며 "앞으로도 천천히 계속 노력해서 이번에 선정되지 않은 분들이 다음 기회에 다른 형식으로 한을 풀어드리겠다"고 말했다.

 그간 북측에 가족을 둔 4~5명이 추첨 현장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2명만이 현장을 방문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이산가족이 많아지면서 현장을 찾는 이들도 줄어들고 있다고 적십자사는 설명했다.

 가장 먼저 추첨식장을 찾은 이는 평안북도 출신 박성은(95)씨였다. 밭은기침을 하며 추첨식장에 들어선 박씨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월남했다. 그간 수차례 상봉을 신청했지만 한번도 당첨되지 않았다. 부모와의 만남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동생과 사촌을 만나려 신청했지만 행운의 여신은 그를 외면했다.

 박씨는 "나로선 이번이 마지막이다. 친구와 동생들이 다죽었다. 내 주위에 나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나도 이제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이번에 당첨되지 않으면 또 언제 하겠냐. 기약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해도 신계군 출신인 이용녀(90)씨도 현장을 찾았다. 이씨는 6·25전쟁 당시 3살배기 딸을 친정에 맡기고 월남했다. 이씨가 환갑을 맞은 해 세상을 등진 남편은 생전에 술만 마시면 딸을 그리며 울었다.

 이씨는 "딸을 꼭 좀 찾아 달라. 찾아주면 내가 한턱내겠다. 내 나이 90인데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고 말했다. 또 "딸이 살아있으면 깨물어주고 싶지. 살아있다는 소식만으로도 감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씨와 이씨는 당첨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추첨식장을 떠나 적십자사 별관 1층으로 이동했다.

 박씨는 당첨여부 조회를 위해 적십자사 직원에게 인적사항을 넘겼다. 박씨의 청력이 떨어져 직원은 종이에 글을 적어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박씨는 옆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이씨에게 고향을 물은 뒤 "황해도면 걸어갔다 오시지 그랬어"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박씨는 긴장감을 떨치려는 듯 큰 목소리로 이산상봉과 남북관계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이런 식의 상봉은 사람 속을 녹이는 것이다. 38선 없애고 한달만 자유롭게 오가도록 허락하면 된다"며 "동생들도 이제 다 늙어빠졌을 건데 이(치아)를 고쳐주려면 한달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 순간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직원은 박씨에게 "추첨명단에 성함이 없으세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박씨는 "(내 이름이) 없단 얘기 아니냐"고 되물은 뒤 맥이 풀린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저는 이제 상봉 끝났어요. 나는 낙제점"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을 기약해보라는 위로에 박씨는 "수십번 신청했는데 또 떨어졌다. 다음이 또 오겠냐"고 대꾸한 뒤 건물을 빠져나갔다.

 이씨도 당첨되지 않았다. 이씨는 억울한 심경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왜 못가. 보내줘야지. 이번에는 무슨 수로든 내 딸을 찾아야지"라며 "안 찾아주면 여기 드러누울 거다. 한발짝도 못 뗀다. 왜 나만 빼놓으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그 후로도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대로 앉아있었다.

 박씨와 이씨에 이어 또 1명의 이산가족이 확인장소로 들어섰다. 개성 출신 김영헌(90)씨는 동생들을 찾아왔다고 했다.

 김씨 역시 당첨되지 않았다. 적십자 직원은 "다음에"라고 말한 뒤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김씨는 낙담하며 발길을 돌렸지만 화가 난 듯 이내 돌아왔다.

 김씨는 직원에게 "지난번에는 60대도 상봉하러 다녀오더라"라며 "생년월일 순서대로 해야지 왜 컴퓨터로 추첨하느냐"고 말했다. 또 "빽으로 한 것 아니냐.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 보낸 것 아니냐"고 따졌다.

 직원이 공정성을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그는 "기준 자체가 나이 순이 아니다. 모든 계층이 평등하게 상봉하게 해야 한다"며 "70~80대가 왜 우리는 못 가게 하냐고 하면 어떻게 답하겠냐"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90대 이상을 다른 연령대보다 많이 뽑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게 무슨 공정한 거냐"라며 "나이 먹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시간이 모자라다. 며칠전 돌아간 김종필씨가 나와 비슷한 연배다.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지갑에서 국가유공자증을 꺼내보였다. 그는 "나도 국가유공자"라며 "도대체 돈을 얼마나 먹었냐. 00% 빽으로 선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적십자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100대1 경쟁률이다보니 탈락하는 분이 많다"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적십자사는 상봉자 범위를 넓히기 위해 상시 생사확인을 비롯해 상봉 정례화, 상봉 인원 확대, 서신 교환, 영상편지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상봉행사를 우리정부나 미국정부와의 협상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며 대다수 이산가족의 재회를 가로막는 현 상황이 끝나지 않는 한 추첨되지 않은 이산가족의 고통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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