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스태프는 갑도, 을도 아닌 정(丁)이다”

현지용 기자 | 기사입력 2019/07/15 [17:53] | 트위터 아이콘 444,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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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스태프는 갑도, 을도 아닌 정(丁)이다”

현지용 기자 | 입력 : 2019/07/15 [17:53]

지난 14일 모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방송제작 하청업체가 방송스태프에 대한 임금을 체불한다는 폭로가 퍼져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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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현지용 기자] 방송 스태프에 대한 열악한 노동실태가 고질적인 임금체불로까지 미치는 가운데 이에 대한 방책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지난 14일 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세트팀을 맡는 휴먼아트가 한 방송스태프 2명의 임금 2250만원을 지난 8개월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게시물이 게재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게시자는 “저와 제 친구의 급여가 몇 개월씩 밀리고 제 날짜에 준 적이 없어 지난 3월 고용노동부에 진정 신청을 하자 회사 대표는 ‘진정 신청을 했기에 일부러 (급여를) 늦게 준다’고 말했다”며 “회사는 8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1원 한 푼 지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논란이 커지자 CJ E&M은 한경닷컴과의 인터뷰를 통해 “하도급 계약이기에 임금체불과 관련해 자사에 책임은 없다”고 선을 그으며 “드라마 ‘남자친구’ 제작사인 본팩토리는 하청업체에 모두 지급 완료한 상황이나 휴먼아트 쪽은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빠른 시기에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고 책임을 구분하고 나섰다. 

 

◇ 법은 과연 방송 스태프를 보호하고 있나 

 

논란의 와중에 얼핏 보면 이번 임금 체불 문제는 휴먼아트와 같은 2차 하청업체의 전적인 잘못으로 보일 수 있다. 개별적인 사건으로만 놓고 보면 임금 체불 기업과 피해 노동자라는 단순한 구조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십여 년 넘도록 뿌리 깊게 내려진, 고질적인 방송 스태프계의 노동 착취구조가 드리워있다. 

 

지난 2016년 10월 말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을 맡던 故 이한빛 씨는 드라마 종영 이후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해 1월 CJ E&M에 입사한지 1년도 안된 해였다. 그러나 신입 조연출에게 지워진 업무는 의상, 소품, 식사 등 촬영준비부터 정산, 편집 등 살인적인 업무강도와 업무시간이었다. 

 

생전 故 이 PD가 회사로부터 무수한 언어폭력과 인사불이익, 과로 및 정리해고 업무를 떠맡는 등 가혹한 관리를 당할 때 그를 보호해주는 법은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도 없었으며 당해 근로기준법 또한 이 PD를 보호해주는 어떠한 법적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실태는 수십 년간 방송 제작업계에서 막강한 갑질 권력으로 뿌리내려온 관행이 있었기에 유지될 수 있었다. 노동자를 보호해야하는 근로기준법이 무수한 비정규직·계약직·하청직·파견직 등 기형적인 노동 계약 구조의 강압에 의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tvN의 드라마 제작 하청업체가 받고 있는 임금체불 논란 또한 이것의 대표 사례 중 하나다. 오히려 이보다 더 심한 사례는 드라마 제작업계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실태다. 두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중순에야 방송 스태프에 대한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기준을 세웠으나 그마저도 권고·권장 수준에 그쳐 현재까지 방송 스태프 노동 착취를 가능케 하도록 빌미를 제공했다. 이와 관련 지상파 방송 3사,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지난 4월 4자 협의체를 구성했다. 

 

사진 / 보배드림 캡처

 

◇ “방송 스태프, 갑을병정 중 맨 밑의 ‘정(丁)’” 

 

김두영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논란에 대해 “4자 협의체 내에서도 해당 문제들을 많이 제기하고 있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체 내에서 만들어야한다고 회의한 바 있다”며 “방지 장치를 분명히 만들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평가했다.

 

김 지부장은 “그동안 관행처럼 이뤄져온 ‘단가 후려치기’식의 계약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제작비를) 원천공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방송사의 일방적인 제작비 삭감 도 생긴다”며 “일반 방송 스태프는 갑을병정 중 맨 밑의 ‘정(丁)’이다. 관행 속에서, 위에서 난 피해가 고스란히 밑으로 전달되는 형태”라 비판했다. 

 

이어 “그 피해는 임금체불뿐만 아니라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서도 드러난다”면서 “(추가) 수당을 일체 지급하지 않는 형태로 수십년 간 강압적인 계약형태-표준 근로계약이 아닌 ‘턴키(TurnKey)’ 계약-를 강요하는 형태가 관행적으로 내려왔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현실적으로 법적인 안전장치는 전혀 없는 수준”이라며 “방송사 등 원청에서 일방적으로 1차 제작사에 제작비를 지급하면 끝이고, 그 밑의 하청업체 아래 ‘정(방송스태프)들은 알아서 받는 것이기에 법적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8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조사’를 통해 집계한 2017년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중 표준계약서 작성 비율. 사진 / 한국콘텐츠진흥원

 

◇ 노동에 대한 존중은 무게있는 처벌에서 나온다

 

문체부가 권장으로 내놓은 방송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에 대해 김 지부장은 “현장에서는 표준근로계약서가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기에 관행은 지속되고 임금체불,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이 계속되고 있다”며 “임금 체불 등 불량 제작사, 불량 하청업체에는 다음 계약 때 패널티를 적용하는 확실한 장치가 없다면 (문제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 말했다.

  

방송 스태프라는 노동자에 대해 단순 권고 수준이 아닌, 강제성이 있는 법적 보호 장치가 없다면 단가 후려치기의 도미노, 표준근로계약서가 없는 노동은 언제든지 계속된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조사한 ‘2018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년도 기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지상파는 61%, 종편PP는 57%, 일반PP는 66%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에 가까운 방송 스태프가 표준근로계약서 없이 일하는 셈이다.

  

정부는 취임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 것’이라 대국민 약속을 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방송 스태프에 대한 노동 실태는 기대에 뒤떨어진 실정이다. 방송 스태프라는 노동자와 그들의 노동을 정말로 존중한다면 이들을 법적으로 명확하게 보호하고 이를 어기는 자에 대해서는 명확한 처벌을 마련해야겠다. 존중은 고매함과 배려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무게있는 처벌이라는 두려움, 정의가 가름 짓는 지엄함에서 나온다. SW

 

hjy@economicpost.co.kr

시사주간 현지용 취재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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