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진상 일본의 생체실험②] 관동군731 특수부대 진상조사 개요

황채원 기자 | 기사입력 2019/08/27 [09:42] | 트위터 아이콘 444,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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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진상 일본의 생체실험②] 관동군731 특수부대 진상조사 개요

황채원 기자 | 입력 : 2019/08/27 [09:42]

1940년 11월 중국 지린(吉林) 성 눙안(農安)에서 일본이 자행한 사실상 생체실험이었던 "전염병 예방조치"를 보여주는 2014년 1월 복제된 사진. 일본 침략군은 1932~1945년 중국에서 군인 1만 명으로 구성된 세균전쟁 부대 60개를 만들었다. 중국 시민 최소 27만 명이 생체실험의 피해자다. 악명 높은 '731부대'를 포함한 일본군은 생체 세균실험에 기반을 둔 세균무기를 개발했다. 또 이 세균무기를 전투에서 사용해 중국 시민에게 페스트와 탄저병을 유발했다. 사진 / XINHUA


4. 진상조사 활동

 

위원회는 아래에서 보듯 국내외 기관과 국가를 대상으로 자료조사를 실시, 관련자료 총 1000여 건을 입수했다.

 

가. 문헌자료 조사

 

1)국내

문헌자료 조사는 먼저 731 관련자료 목록 작성에서부터 출발했다. 지금까지 발표됐거나 비록 발표되진 않았지만 검색하면 관련내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료, 리스트를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1000여 종의 목록(김창권회장 소장)이 작성됐다. 두 번째의 작업은 진상조사 대상 기관을 선정하는 일이었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국내의 경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국회도서관, 서울대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등의 기관이 선정됐다. 각 진상조사 과정에서 국내외 자료수집은 여러 가지로 미비했다. 당시 생체실험이 중국에서 시행됐을 뿐 아니라 전쟁당사자가 아니라는 점, 일본통치하에 있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자료수집이 불가했거니 일본 측의 고의적인 폐기로 멸실돼 있어 국내에서의 자료수집 및 증언자 채집은 소기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국외

국외 자료조사는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 몽골 등 대상으로 김창권회장의 현지출장 조사방법을 택했다. 이때 현지 전문가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국외 조사에서 가장 비중을 둔 나라는 중국과 일본이다. 중국자료 조사는 731부대가 실재했던 하얼빈 지역의 당사국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유물 및 실제 자료가 많을 것이란 예상 때문에 심도 있게 추진했다. 자료수집 및 발굴에 도움을 준 곳은 중국의 731연구소(소장/김성민), 하얼빈 사회과학원, 무순시 사회과학원등과 몽골 울란바트로 국방대학, 일본 ABC기획위원회, 중국인 전투피해 배상청구단, 나라시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등이다. 러시아와 미국의 자료는 아직 발굴하지 못하였으나 앞으로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 러시아연방 기록관리청, 대외정책문서보관소, 국방성 중앙문서보관소-키로프생물연구소 등과 미국립문서보관소 맥아더기념관, 미육군군사연구소등의 자료 검색을 통해 관련자료를 발췌하고, 조사팀을 파견할 예정이다.

 

일본자료 조사는 731부대 당시 의무병이었던 와타나베씨의 도움을 받아 일본 ABC기획위원회, 중국인 전투피해 배상청구단, 나라시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접촉했으며 이 조사에서 몇 종의 자료를 입수했다. 일본조사는 와타나베씨를 중심으로 한 생존자 및 희생자, 당시 의사(현 국제병원원장) 등을 대상으로 한 증언채록 조사도 함께 추진됐다. 국외 자료의 효율적인 발굴을 위해 해외담당 이사(조명애박사)를 두었다. 한편 해외 역사 규명에 대한 사례를 참고하기 위해 독일의 아유슈비츠 진상을 조사하여 참조했다.

 

 

3)자료집 발간

국내외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분야별로 정리하여 펴낼 예정이다. 사건의 배경과 전개과정, 피해상황 등의 진상규명은 물론, 731부대의 실상을 파악하는 기초자료로서 활용하기 위해서다. 자료집을 발간할 때 신뢰성과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영인본을 함께 수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나. 증언채록 조사

 

최근 구술사(Oral History)는 역사연구에서 그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특히 731관련 사건처럼 특이한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의 하나가 바로 관련자들의 증언(구술)채록이다. 여기서 4?3사건을 ‘특이한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인류가 경악할 만한 사건임에도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중요한 자료가 묻혀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반세기 동안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진상조사 작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기간 억제돼 왔다는 점이다. 셋째는 사건의 성격에 대해 아직도 보는 시각에 따라 의학적 목적과 잔인한 인권침해의 대립 구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실규명을 확실히 할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동시대 체험자들의 구술이 필요했다.

 

증언조사는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 하는 대상자 선정에서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사건의 현장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우선 선정하되 균형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생존자를 찾는 게 급했다. 그러나 관계자인 일본인들은 설사 생존해 있다고 하더라도 자국에 대한 충성심이나 죄의식 등으로 인해 증언하기를 꺼렸다. 또 피해자의 자손들은 중국이나 필리핀 ,몽골, 러시아 등 각 지역에 흩어져 있어서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특히 한국인 희생자는 대부분 북한 지역출신이라 접근에 상당한 애로가 있었다. 북한 관련자들과 이 문제를 상의하고 그들도 흔쾌히 피해자 유가족들을 찾아보겠다고 하였으나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모든 증언은 녹음기로 녹취하고 캠코더로 녹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조사팀은 해당 증언자의 주변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자료를 준비, 기초적인 설문을 마련했다. 증언조사는 개인적인 체험담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한 뒤, 준비된 설문에 따라 질의-응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 증언조사는 55~60년 전의 사건을 증언자들의 입을 통해 생생히 드러냈다는 이점도 있었지만, 기억의 한계성과 현재에서 과거를 보는 기억의 선택성으로 혼선을 빚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증언내용 가운데는 사건 발생 시점에서 오락가락하는 사례가 많았다. 따라서 어떠한 증언이든 철저한 검증과 분석이 필요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증언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인가를 판단하는 문제였다. 이것은 단순히 한 증언자의 이야기로만 규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증언자의 증언내용과 각종 문헌자료의 내용에 대한 비교 검토,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해석 등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했다. 즉 교차검토(Cross Check)를 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해당 증언자의 신뢰도에 대한 검증도 함께 실시했어야 하나 증언자의 수가 제한적인 관계로 검증이 불가했다. 

 

■자료수집 기관 및 국가

 

기관 및 국가

국내 (19)

국회, 통일부, 국방부, 정부기록보존소, 국사편찬위원회, 군사편찬연구소, 중앙도서관, 각 언론기관

국외 (7)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대만 몽골

 

■수집자료 분포상황

 

연감/군경/법령/일반재판판결문/정부기관발간물/연구저서/단행본/수록논문/회고록/전기/ 영상물/사진첩/외국번역물/ 문학작품/증언채록자료/관보/기사/논설/기고문/기타

미국자료/ 러시아자료/ 일본자료/중국자료/대만자료/몽골자료/필리핀자료/북한자료

 

■증언자의 출신성향

 

의사/ 전직군인/ 경찰/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 필리핀인/ 몽골인/ 재일동포/ 재중동포/ 기타

 

다. 검증 및 분석 작업

 

증언이든 문헌자료든 그것이 진실일 때 사료의 가치가 있다. 따라서 각종 자료의 진위를 가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731부대사건을 다룬 기존의 기록 가운데는 실제의 사실과 다르게 기술한 자료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기록들을 과장-축소하거나 왜곡하여 반복-인용하는 사례도 많이 발견됐다. 김창권 회장에게 있어서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도 중요한 과제의 하나였다. 그래서 어떤 자료나 증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앞에서 밝힌 교차검토 검증작업이었다. 이때에 문헌자료와 증언은 상호보완적이라 할 수 있다.

 

왜곡됐거나 오류를 범한 내용일지라도 한 번 활자화된 자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설로 굳어지기 쉽다. 다른 자료로 반증할 수 없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게 바로 증언 조사였다. 그러나 증언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줄 많은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수치나 날짜 등이 불분명하고 혼돈을 일으킬 가능성 또한 있다. 이를 해소하면서 실마리를 찾게 해주는 게 바로 문헌자료이다. 따라서 자료와 자료, 문헌자료와 증언 사이를 교차하면서 검증에 검증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다량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 베이스(data base)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입수된 각종 자료와 증언 내용들을 주제별로 컴퓨터에 입력시키고 사건의 날짜, 지역, 주제, 인명, 단체 등 여러 형태로 검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조만간 아래와 같은 내용을 주테마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집적화 할 것이다.

 

① 60여 년의 진상규명 역사

② 731부대와 사건의 정의

③ 731부대 설립의 배경과 원인

④ 일본정부의 개입범위와 역할

⑤ 731부대 조직과 활동

⑥ 조선인 마루타 수

⑦ 전체 사망자 수

⑧ 가해자 통계구분

⑨ 731부대에 의한 피해

⑩ 이시이 및 관련자들의 행적

⑪ 집단피해 지역 및 물적 피해

⑫ 전범재판의 적법여부

⑬ 배상문제 및 진상규명 특별법

⑭ 생산된 생물무기 종류

⑮ 종전 후 미군의 개입과 역할 등. SW

 

hcw@economicpost.co.kr

시사주간 황채원 취재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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