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광장정치와 상실된 ‘원칙과 신뢰’

오세라비 작가 | 기사입력 2019/10/14 [09:22] | 트위터 아이콘 443,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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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광장정치와 상실된 ‘원칙과 신뢰’

오세라비 작가 | 입력 : 2019/10/14 [09:22]

자크 루이 다비드의 1787년 작 '소크라테스의 죽음'. 사진 / Metropolitan Museum of Art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우리 사회는 정치의 영향력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 사회 분야의 모든 것이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 시민사회는 정부와 시장 사이에 자리매김한다. 시민사회는 현대 정치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하나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곧잘 광장정치로 발현된다.

 

광장정치의 상징적 장소인 서울 광화문부터 이어지는 시청 앞 광장은 대표적인 시민사회의 장이다. 현 시기 정국의 뜨거운 이슈인 ‘조국 법무부장관 일가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광장정치의 장소를 대검찰청이 자리하고 있는 서초역 사거리까지 포함시켰다. 젊은 계층의 집결 장소인 대학로 혜화역 인근도 빠질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광장정치는 중요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광장정치는 촛불시위 형식으로 대중화되었다. 대규모 촛불시위의 효시는 2002년 6월 경기도 의정부에서 발생한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사건이었다. 사고를 낸 미군은 무죄평결을 받았고, 시민사회의 공분을 샀다. 그해 11월 광화문은 수만 개 촛불로 뒤덮였다. 2002년 촛불시위를 계기로 시민사회는 크고 작은 이슈가 있을 때 촛불시위는 대규모 집회 형식을 띄게 되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시위, 2008년 미국산 수입 쇠고기 광우병 파동으로 5월부터 7월까지 엄청난 규모의 인원이 촛불시위에 참가하였는데, 광우병 파동 시위의 주역은 10대 청소년을 포함한 청년세대가 주도하였다. 가장 강력했던 촛불시위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촛불로 시민사회의 거대한 힘을 보여준 집회였다.

 

시민들의 자발적 공감대를 형성한 촛불집회 형식은 아니더라도 페미니스트운동 단체가 주축이 된 ‘불편한 용기’라는 임시 단체의 ‘편파 수사 규탄’ 시위가 대학로 혜화역에서 2018년 5월~12월까지 6차례 열리기도 했다. 2018년 5월 1일 한 여성 피의자는 홍익대 회화과 누드 드로잉 남성모델의 나체 사진을 몰래 촬영해 과격 여성우월단체인 인터넷 사이트 ‘워마드’에 업로드했다. 사건 발생 열흘 만에 피의자가 검거되자, 단체는 “여자라서 빨리 잡았다”는 이유로 경찰의 수사를 문제 삼았다.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는 삼권분립에 기초한 대의민주주의이다. 시민사회의 광장정치는 의회민주주의와 대립하고 갈등하지만 상호 보완적 작용도 한다. 그렇다면 광장정치 모델의 효시는 언제부터 일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길거리 대화 정치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면서 시작되었다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당시 아테네는 정치적 혼란이 심각하였으며 시민들은 두 쪽으로 갈라져서 서로 비판과 증오가 난무하는 적대적 상황이었다. 아테네의 소요 사태는 계속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과 거리와 광장에서 문답식으로 끈질기게 토론정치를 이끌었다. 아테네의 많은 시민들이 소크라테스 주변으로 구름떼처럼 몰려들었고, 한편으로는 적개심을 품는 사람들, 또 다른 편은 정치가들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견제가 늘어났다. 아테네의 정치 불안상태는 위정자들로 하여금 소크라테스의 비판과 토론을 선동정치로 몰아가 결국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소크라테스의 최후는 알려진 대로다. 

 

광장정치가 격화되면 희생이 따른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 그리고 플라톤을 스승으로 삼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아테네의 존경받는 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아테네의 정치적 혼란은 소크라테스와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를 떠나면서 남겼던 말이다. 

 

“아테네 시민들이 두 번씩이나 철학자에게 죄를 짓지 않겠다.” 

 

광장정치와 민주정치에는 괴리가 분명 존재한다. 소크라테스가 민주정을 비판하며 거리에 나와 토론정치를 이어나간 이유도 위정자들의 정치에 대한 오만과 무지,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 전문성 부족을 질타하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는 불완전하고 많은 결함을 안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1인 1표제, 다수의 결정을 통한 정치 시스템 또한 올바른 의사결정과 거리가 멀 수도 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 원칙 아래 타협과 협상하는 숙의민주주의, 협의민주주의 틀에서 해결해 나가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광장정치의 과열은 이념 갈등과 분열을 유발한다. 광장정치가 공포를 조성하고 시민들을 불안하게 할 때 파시즘적 경향을 띄게 된다. 파시즘은 우파, 좌파 구분 없이 무력으로 통치를 할 때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정자들의 객관적인 조정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세웠던 대표적인 슬로건이 ‘원칙과 신뢰’였다. 이 슬로건에 다수의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냈고, 참여정부는 탄생하였다.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문재인 정부는 ‘원칙과 신뢰’를 지켜야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원칙과 신뢰’를 스스로 상실했다. 인사검증 등 인물 등용에 요구되는 원칙을 상실했고, 국정 운영에 있어서도 신뢰를 얻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원칙이 선택적 원칙이거나 진영 논리에 따라 적용되는 원칙이어서도 안 된다. 지지를 보내는 세력에게만 얻는 신뢰가 아니라 다수가 공감하는 신뢰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 반환점이 채 돌지 않은데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대중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광장정치가 더욱 격화되어 분열로 치닫게 되면 정치는 이류, 삼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SW

 

murphy803@hanmail.net

시사주간 오세라비 작가입니다.

"미래는 타협하지 않는 오늘이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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