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종 변호사의 법률칼럼] 재산상 이혼 사유가 존재하지만 혼인의사의 합치도 없었던 경우 혼인관계의 해소방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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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종 변호사의 법률칼럼] 재산상 이혼 사유가 존재하지만 혼인의사의 합치도 없었던 경우 혼인관계의 해소방안은?
  • 시사주간 편집국
  • 승인 2018.09.0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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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종 변호사. 사진 / 법무법인 해승

 

Q : 시골에서 소규모 농장을 경영하는 A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땅한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다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당시 유행하던 필리핀 국적의 여자 B와 2012. 8. 26. 필리핀에서 혼인을 하고 같은해 9. 19.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마쳤습니다. B는 2012. 11. 1. 입국하여 A와 혼인생활을 시작하였는데, B는 처음부터 부부관계를 거부하더니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가출을 한 후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가출 당시에 B는 필리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결혼했고 이를 위해 일을 해야 하고 결혼으로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되어 A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남겼으며, 실제로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아 취업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혼인을 했지만 정상적인 부부 관계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내온 터라 A는 B와 혼인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이혼 보다는 혼인 자체를 무효로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A : 전통적인 남아선호 사상으로 말미암아 남초현상이 두드러져 혼인적령기에 결혼을 하지 못하고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동남아시아 처녀들을 국내에 소개하여 혼인을 성사시키는 결혼정보회사가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파로 형식적으로 혼인신고만 하고 실제로는 남남으로 지내는 기행적인 부부관계가 늘어나게 되었는데, A의 입장에서 볼 때 이혼을 통해 부부관계를 해소하더라도 이혼남의 멍에를 지게 되므로 혼인이 없었던 것으로 처리되는 혼인무효를 통해 B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우리 민법은 법률상 혼인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혼인의 무효, 취소, 그리고 이혼을 규정하고 있는데, 민법 제815조는 혼인무효 사유로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거나 혼인 당사자가 일정 범위 이내의 친인척 관계에 있을 경우로 한정하여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A와 B는 친인척 관계와는 무관하므로 A가 주장할 수 있는 혼인무효 사유로는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경우로 한정됩니다.

 여기서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법원은 당사자 사이에 사회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의 합치가 없는 경우를 의미하므로, 당사자 일방에게는 그와 같은 참다운 부부관계의 설정을 바라는 의사가 있었지만 상대방에게 그러한 의사가 없었다면 비록 당사자 사이에 혼인신고 자체에는 의사의 합치가 있어서 부부라는 신분관계를 형성하였다고 하더라도 혼인의 합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B가 진정한 혼인의사를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를 살펴보면, 일응 혼인신고는 당사자 간에 의사의 합치가 있었지만 참다운 부부관계를 설정하려는 의사가 없었음에도 단지 한국에 입국하여 취업을 합법적으로 하기 위한 방편으로 A와 혼인을 한 것으로 보여지는 정황이 많이 드러납니다. 비록 B가 한국에 입국한 후 한 달 동안 A와 정상적인 부부로 함께 생활하면서 계속 혼인생활을 해왔다고 하더라도, 한국에 입국한 후로 부부관계도 가지지 않았으며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혼인생활의 외관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이므로 A와 B 사이의 혼인관계는 혼인의사의 합치가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효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B가 혼인을 하게 된 동기나 혼인 이후의 B의 행동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혼인관계를 무효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국제결혼의 경우 외국인 배우자가 가출하는 등 혼인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혼인무효로 판단받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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