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황혼이 슬픈 우리시대의 자화상 차숙자(車宿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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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황혼이 슬픈 우리시대의 자화상 차숙자(車宿者)
  • 김도훈 기자
  • 승인 2018.12.0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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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이 서러운 그들…기댈 따스함이 없다
차숙자(車宿者) 이광열씨는 사진촬영을 승낙은 하돼 얼굴 정면 촬영은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 / 김도훈 기자

[시사주간=김도훈 기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차가운 겨울 날 이광열씨는 오늘도 막걸리 한잔에 시름을 달래며 한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가 차숙자가 된지도 벌써 3개월째다.

지난 3일 어두컴컴한 저녁 무렵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아파트의 한 외진 순대국집에서 만난 이광열씨는 초췌한 모습에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내 뱃으며 연신 막걸리 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그가 차숙자(車宿者/차에서 잠을 자는 사람)가 된 사연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올해 나이 70세인 이광열씨는 오갈데가 없는 독거노인이다.

그가 독거노인으로 지금은 철거준비중인 개포동 주공1단지 아파트에 거주한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주공1단지 아파트가 재개발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월세를 꼬박꼬박 내며 새우잠 신세는 면했었다”고 그는 말했다.

“1년 여 전까지만 해도 그나마 신체적 조건이 허락돼 막노동이라도 해가며 월세를 충당해 낡은 싱크대에서 손수 밥도 지어 먹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가 차숙자가 되기까지는 아주 짧은 시간이 소요됐다.

나름 살림살이와  옮길 거처를 알아보고 있던 중, “집주인의 권리행사로 명도소송 중이던 거주지에 어느 날 갑작스런 강제집행이 이루어지며 그의 세간살이는 낡은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던져지고 눈비를 맞던 세간살이는 그 후 쓰레기더미로 옮겨졌다”고 한탄했다.

가로등 불빛만이 유일한 친구인 썰렁한 그 곳, 차숙자[車宿者] 이광열씨의 20년지기 쏘나타 차량이 덜덜거리는 엔진소리를 내며 추운 겨울 밤을 그와 함께 지새고 있다. 사진 / 김도훈 기자

이광열씨는 "현재 무일푼 신세"라고 말했다.

건강이 악화되며 그나마 막노동도 하지 못해 수입원이 끊겨 월세를 갚지 못해 묻어 두었던 보증금으로 까였다.

이씨는 집주인의 가혹한 법리행사에 가슴을 아파했다.

가진자의 한파처럼 매서운 자기권리행사에 심히 마음을 다친듯했다.

이씨는 일찍이 이혼을 하고 슬하에 불혹을 넘긴 장성한 두 딸을 두고 있다.

두 딸도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자신을 챙겨줄 입장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말투까지 냉정한 장녀에 비해 아빠를 걱정하는 둘째딸의 울먹임에 슬픔의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이광열씨는 한 때는 잘나가는 인테리어업자였다.

경기 좋던 7-80년대는 하루저녁 술값으로 몇백만원을 써보기도 했다.

금전관리를 소홀히 한 역풍을 말년에 톡톡히 겪고 있는 중이다.

이씨는 “국가가 지원하는 노인복지시설에는 가고 싶지 않다” 했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생활임에도 간섭받는 생활은 하고 싶지 않는 듯 했다.

이씨는 노후를 염두에 두지 않은 돌이킬 수 없는 현란한 과거의 생활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운의 미래를 난제로 안고 살아가야 할 형편이다.

왼쪽 다리를 쓰지 못해 지팡이에 의지하고 20년 된 소나타 차량으로 차숙(車宿)을 위해 걸음을 옮기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황혼에 드리운 우리시대의 어두운 자화상을 보는듯해 씁쓸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SW

kdh@economicpost.co.kr 

[이 기사는 2018년 12월 20일 '한국신문방송인클럽'으로부터 이달의 기자상 기획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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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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