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정조의 박학다식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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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정조의 박학다식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3.2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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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정조는 박학다식했으며 공자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그의 지식에 노회한 신하들도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대체로 윗사람이 너무 아는게 많으면 아랫 사람이 괴롭다. 아는게 많으면 독선이나 편협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선 성리학자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자신만이 선이요, 도덕군자라고 여겼다. 그래서 공자와 주자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면서 노자, 장자, 양명학(왕양명), 불씨(석가) 등 다른 학문을 배척했다.

정약용도 정조가 어려서 아직 사리(事理)에 어두운 아이처럼 때리며 생도 같이 제한한다(擊之如童蒙 束之如生徒)”라며 비판했다.

군자를 찾던 조선이 서로 죽이고 죽는 사색당파의 정치판으로 변한 것은 정적을 사문난적(斯文亂賊: 성리학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으로 나라를 어지럽힌 도적)’으로 몰아 가면서 더욱 심해졌다. 성리학적 질서는 사회 변화의 움직임을 억압하려던 조선 후기에 더욱 강화됐다. 성리학은 더 이상 현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국의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돼 이데올로기화() 되어 갔다. 성리학이 지배층의 이론적 도구이자 사상적 무기로 쓰였기 때문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공자는 군이부당(群而不黨)’이라 하여 무리지어 편을 가르는 것을 가장 경계했는데 공자를 공부(물론 성리학이 조금 변질되기는 했지만)하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한 점은 불가사의다.

일본 교토대학 오구라 기조 교수가 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은 우리나라를 ()의 사회로 단정지었다. 그는 이런 사상이 각종 사화와 소중화론을 낳았고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성리학적 관념의 세계에 빠진 나머지 고립과 쇠락의 길을 걸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리가 살아 숨 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리기(理氣) 사회주의의 완성체로 보았다. 성리학적 질서()에 김일성 일가에 대한 영웅 숭배()가 맞물려 돌아간다는 의미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아마도 에 가까운게 아닌가 한다. 이념이 실용보다 앞서고 분배에 치중하며 도덕적 우월감으로 타인을 배척하는 점 등이 유사하다.

또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경제인을 맨 밑자락에 두었던 성리학처럼 문재인 정부도 반()기업 정서가 지나치다. 이념과 이상을 추구한다지만 수염이나 쓰다듬으며 헛기침이나 하던 양반들처럼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 ‘국가 경제는 견실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19일 국무회의)’는 말처럼 그 예는 헤일수 없이 많다.

권력과 편향된 지식이 융합되면 독재로 치닫는다. 자기와 다른 지식인을 몰살 시켜 버리는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그래서 욕먹고 있는 것이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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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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