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황희 정승과 조국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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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황희 정승과 조국 수석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4.0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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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수석(좌측)과 황희 정승. 사진 / 시사주간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일국의 장관은 옛날로 치면 재상으로 임금을 보필하던 최고 책임자다. 내각 수반(총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조선에서는 정3품 이상의 당상관(堂上官)으로 임금을 보필하여 국무를 처리하던 관직을 재상이라 불렀으므로 장관급들을 통칭한다고 보면 무난하다.

신라시대엔에는 진골만이 오를 수 있었으며 왕의 자리로 가는 교두보이기도 했다. 고려나 신라시대에는 국자감이나 성균관을 통해 최고의 인재로 걸러져 과거에 합격해야 겨우 넘볼 수 있는 자리였다. 나라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자리이니 만큼 도덕성, 청렴성, 학식 모두를 갖춰야 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장관직에 오른 일부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참으로 놀랍다. 남의 논문을 표절해 학위를 딴 사람이나 부동산 투기를 한 사람, 자식의 취직 청탁을 한 사람, 등이 버젓히 자리를 꿰차고 있다.

최근 며칠간 진행된 인사청문회는 더 볼썽 사나웠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견디지 못하고 사퇴하고 대통령은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후보자를 지명철회까지 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장관은 한 나라의 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중차대한 자리다. 인성이 바르고 언행도 조심해야 하며 자기편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당연히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할 때는 확실한 검증을 통해 국민이 존경하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을 내세워야 한다.

1408(태종 8) 24<태종실록>에는 지신사(知申事:도승지) 황희가 지이조(知吏曹:이조의 일을 맡음. 또는 그 사람)로서 중간에서 용사(用事:권력을 장악하다)한 지가 오래 되어, 비록 두 정승이 천거한 자라도 쓰지 않는 것이 많고, 자기와 친신(親信:친하고 믿는)한 사람을 임금께 여러 번 칭찬하여 벼슬에 임명하게 하니, 재상이 매우 꺼려 하였으나 어찌할 수 없으므로, 매양 전선(銓選:전형하여 골라 뽑는 것)할 때를 당하면 사양하고 회피하여 물러갔다. 이에 좌·우상이 모두 겸령(兼領:둘 이상을 아울러)하는 것을 사면하니, 황희의 공정치 못한 일을 갖추어 익명서를 만들어서 두세 번 게시한 일이 있었다. 황희가 조금 뉘우치고 깨달아, 이때에 이르러 계문(啓聞:글로 임금에게 아뢰는 것)해서 예전 제도를 회복하게 하였으나, 역시 재상의 의논을 쓰지 않고 붕당을 가까이 하니, 사람들이 모두 지목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지신사 황희가 인사권을 마음대로 휘둘러 재상들이 외면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아는 명 재상도 이리 눈이 멀 때가 있으니 사람을 천거할 때 말과 외형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군자는 언어나 용모가 그 내면과 일치하고 한결같은 사람이다. 겉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안으로는 그렇지 못한 자를 색장자(色壯者)’라고 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좋은 말을 하지만 좋은 말을 한다고 유덕자는 아니다.

대통령은 인사가 참사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제대로 된 사람을 임명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조국 수석은 사람이 없다고 하니 이 나라에 그렇게 인재가 없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사실, 이 진퇴양난은 자기 사람만 찾다보니 일어난 인재난(人材難) ’임을 삼척동자도 안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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