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무지 이해 못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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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무지 이해 못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4.0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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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사진 / 시사주간 DB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 그러다 보니 주변 환경이 변해가는 것도 모르고 흘러간 옛 노래나 부르는 우를 범한다

사실 흘러간 엣 노래는 보수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진보라는 일부 사람들이 더 즐기는 것 같다. 이러니 진보골통이란 말도 나오나 보다.

이런 사람들은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을 선호한다. ‘북한 사회를 북한의 시각으로 이해하자는 송두율 교수의 주장이다. 이걸 좌파들이 가져다 쓰면서 이중잣대’ ‘내로남불을 만들었다.

물론 한 집단을 평가할 때 그 집단 내부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보편적 시각에서 벗어나더라도 그곳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 집단의 문제가 내부 문제로만 끝나지 않고 다른 곳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그리하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논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악령>에 나오는 리푸친은 러시아 자유주의자 모임 회원이다. 그는 무신론자이면서 공상적 사회주의자였다. 푸리에(‘팔랑주라는 자급 및 독립적 공동체로의 사회 전환을 주장했다)에 열광한 이상주의자다.

그런데 이 인간이 하는 짓은 상식 밖이다. 밖에서는 군자인 척하다가 아내의 돈을 사취하고 먹다 남은 음식과 양초 토막까지 챙겨 보관할 정도의 구두쇠였다. 입으로는 사회주의를 떠들지만 속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좌파쯤 되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스스로 묻는다.

이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동시에 대단한 구두쇠이며 돈에 눈이 어두운 자본가인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들이 더 철저한 사회주의가가 될수록 더 철저한 자본주의자가 되는데 도대체 무엇때문일까?

오늘날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기존의 체제, 특히 광복 이후 40여 년간의 체제가 과연 기필코 수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인가?’라며 부정하려 든다. 특히 헨리 조지의 영향을 받은 이른바 일부 조지이스트들은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높아진 것을 경제발전으로 볼 수 없다는 억지 주장을 편다. 또 빈곤, 실업, 사회적 불평등, 자유 등의 개선이 없으면 진정한 발전이 아니라고 못박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체제에서 빈곤, 실업, 사회적 불평등이 없는가? 자유는 또 어떻고? 그렇다면 북한은 어떠한가? 이들 중 일부는 조선조 사색당파의 DNA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듯 행동하며 무조건 기존 체제를 부인하려 든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에 근거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 중 일부는 사실 더 지독한 자본주의자들이다. 자신은 천의무봉한 도덕주의자며 정의롭고 가진자를 사회악으로 본다. 그러면서 강남 살며 미국에 자녀 유학 보내고 집을 몇채 보유하고 뒤로는 투기하는 얼띠기 사이비 좌파들이 바로 그들이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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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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