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大 발굴] 해방전후 시인 허빈 유고작 35년 만에 발굴
상태바
[본지 大 발굴] 해방전후 시인 허빈 유고작 35년 만에 발굴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4.22 06:31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퇴색하는 계절’ 등 40여편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에 활동했던 시인 허빈(許彬)의 유고작 퇴색하는 계절(褪色하는 季節)’이 그의 사후 35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허 시인은 근대 낭만주의를 이끌었던 우리 문단의 대표적 작가인 소설가 채만식, 시인 신석정 등과 교류하면서 서정성과 탐미성 심지어는 근대적 주지성 등을 뭉뚱그린 작품세계로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했던 작가다.

 

해방 전후 우리 문단은 새로운 지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시대를 드리우던 보편적 도덕, 관습적 프레임, 절대 진리의 한계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몸부림으로 모더니즘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부인할 수 없는 체계성을 가진 고답적인 진리마저도 깨부술 기세였다.

 

소설가 채만식, 시인 신석정 등과 교류

신석정 시인이 허빈 시인에게 준 육필시

 

허빈 시인 역시 이러한 세류를 타고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한 것으로 보여진다. 4부작 연가(戀歌) 시리즈나 복사꽃’ ‘밀월’, ‘청루 가시내’, ‘시인의 애인들같은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시체(詩體)가 심층에 자리 잡고 있긴 하지만 표제작 퇴색하는 계절이나 해안선에서(수필)’ 등 실험적이고 주지적이며 관능적 혹은 탐미적인 작품이 상당수 눈이 들어 온다.

 

<紅桃白梨랑 피여지고 薰薰 봄아지랑이 솟을 제 은 싹튼다. 은 퍼진다. 은 뽑힌다. 粉飾한 여자다. 봄 고양이의 눈동자다. 부엉이의 咀呪하는 소리다. 박쥐의 날개로다. 호랑나비의 나룻이다. 은 그게 멋이다. 멋있는 소매치기의 손톱이다. 진정 베짱이의 쓸개로다.’> -‘퇴색하는 계절부분-

 

이에 반해 표절의 한계같은 수필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인의 어려운 삶을 엿볼 수 있어 미소를 자아낸다. 리얼리즘 문학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는데 이는 모더니티의 중핵을 이루는 자본주의라는 물질문명에 된서리 맞은 것같아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지금부터 몇 해 전에 서울出版社에서 泰西詩人詩集藏書刊行한다고 해서 쓰는 R가 그 중 두품을 맡아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궁하니 이걸랑 하세. 참아賣誌는 할 수 없고. 그저 야끼마시만 하면 되겠네. 그 대신 그까짓 판권 주기로 하고 印刷는 우선 직전으로 五萬 圓하고 책 나오면 거듭 五萬 圓 준다네.” 그래 물에 빠진 새앙쥐 격으로 佛蘭西 詩人 作品을 둘로 노놔서두 밤 꼬박 세워 야끼마시 했던 생각이 나는데. 진작등줄기에 진땀이 흐르는 노릇이었다.> -‘표절의 한계부분

 

난해하나 서정성·주지성·상징성 갖춘 작품으로 주목

 

젊은 시절의 허빈 시인

 

유고작에는 신석정 씨가 써 준 사슴도 제철이 되면-()에게 주고 싶은이라는 글도 있어 두 사람의 친분 관계를 짐작케 한다, 채만식 씨가 돌아 가셨을 때 쓴 조사(弔辭)는 가난에 시달리다 '구루마(손수레)'에 얹혀 죽어가는 노() 작가의 아픔과 그 시대의 실상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달팽이(蝸牛) 하루살이(蜉蝣地帶)’ ‘거미(蜘蛛賦)’ ‘지렁이(蚯蚓部落)등을 매개로 비애, 무상(無常), 관능, 사랑을 은유와 직유로 교직하면서 풀어낸 슬픈 족속연작은 시인의 모더니즘적 세계관과 상징시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나그네 길은 허 시인 세상을 뜨기 며칠 전 부인 권경숙 여사에게 준 시다. 권 여사는 “19844월 초, 창경궁 경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서울대학병원 10층 병실에서 그간 살아온 얘기와 함께 당신과 아이들에게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하면서 이 시를 건넸다고 전한다.

 

나그네 길

 

내가가는

가는나그네

누렇게파도치는

보리밭이랑사이로

노고지리가에미야

애비야찢어지게부르며

하늘로날아솟구치는

내가가는

가는나그네

(甲子年 四月 初)

 

이 밖에 삶의 방향을 잃고 죄의식으로 헤매이는 아픔을 노래한 ()’, ‘신석정에게 드리고 싶은이란 부제가 붙은 청맥()’, 희극배우의 애환을 노래한 희극배우(喜劇俳優)’, 지식인의 고뇌와 방황을 보여준 수사(秀史)에게같은 작품들은 어떤 때는 관념과 의식의 바깥 쪽에서 안쪽으로 또 어떤 때는 안쪽에서 바깥 쪽으로 내달리며 작가의 심상(心象)을 전달하고 있다.

 

1949년 서울대 연극단원들과 함께(앞줄 맨 왼쪽)

 

허 시인 글은 매우 난해하다. 처절한 자기 파괴를 통해 세상에 목소리를 열고 싶은가 하면 자연과 사랑, 그리움 등을 뒤틀어 상투적이고 인습적인 주제들과 단절하고 진정한 삶의 모습을 찾아가려 애쓰기도 한다. 보들레르적 분위기, 광우(狂愚)적 시어가 도발적이다가도 이내 윌리엄 워즈워스적인 낭만이 서정미를 더하는가 하면 랭보적 상징으로 치장미를 한껏 살리고 있다. 화려한 문체에 고난도 수사(修辭)가 이어지지만, 내면의 공허함을 덮으려는 시도가 숨어있다.

 

이 유고작은 하마터면 쓰레기 더미에 파묻힐 뻔했다. 장남인 허정회씨(한국사회복지협의회 지역복지개발원 원장)가 어느날 유품을 정리하면서 작품을 발견했다. 낡고 빛바랜 원고지는 손만 대면 부서졌으며 훼손되고 낙장(落張)된 원고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마음으로 오랜시간 정성을 들여 손을 봤다. 허 씨는 손수 펜으로 썼기에 해독이 어려운 곳도 많았다. 몇 군데 주석(註釋)을 달았지만 도리어 본뜻을 오해하지 않았는지 심히 걱정된다며 세상에 내놓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다.  

 

------------------------------------------------------

시인 허빈 

 

허빈 시인 자화상

1927112일 전북 김제에서 허엽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허욱인이고, 호는 하식(何植)이다. 또 다른 필명으로 허빈(許斌)을 썼다.

 

어렸을 때부터 한시에 능했던 선대의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주로 일본인들이 다니던 군산공립중학교를 졸업했다.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상과와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를 수료했다.

대학시절 학생회장을 하면서도 시작(詩作)과 연극에 심취했다.

 

낙향 후 김제공립여자고등학교와 국립군산사범학교 교사를 지냈다.

동시에 시 창작에 젊음을 불태웠다. 소설가 채만식, 시인 신석정과 교류가 깊었다. 국립전북대 상대 전임강사를 끝으로 교편생활을 마감했다.

 

생계를 위해 여러 사업에 손댔으나 재물과는 인연이 없었다. 서예, 회화, 조각에 조예가 깊었다.

 

손위 처남은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대한민국 3대 미술가로 회자되는 권진규씨다.그는 2009년 일본 무사시노(武藏野) 미술대학 개교 80주년을 맞아 무사시노를 빛낸 가장 자랑스러운 조각가로 선정돼 도쿄 국립근대미술관과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랫동안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허빈은 권진규의 예술세계에 공감하고 사후 그의 작품을 우리나라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부인 권경숙 사이에 4남을 뒀다. 198441657세를 일기로 짧은 생을 마쳤다. SW

 

jjh@economicpost.co.kr 

Tag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