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복지부 '장애등급제 폐지'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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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복지부 '장애등급제 폐지'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 엄태수 기자
  • 승인 2019.06.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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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일부터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등이 실시되지만 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사진 / 임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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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엄태수 기자] "장애인 정책이 31년만에 바뀝니다!" 25일 보건복지부는 브리핑을 통해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도입', '수요자 중심 장애인 지원체계로 전환', '23개 국가서비스, 200여개 지방자치단체 서비스 대상 확대'가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된다고 밝혔다. 그동안 장애인의 현실과 욕구를 생각하지 않은 등급제와 지원체계가 이제 단계별로 전환될 것이라는 복지부의 자신에 찬 선언이었다.
 
1988년에 제정됐던 장애등급제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 정도에 따라 장애인을 1급부터 6급까지 분류했지만 점점 더 복잡해지는 장애유형과 다양해진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며 장애인 복지의 가장 큰 '장애물'로 전락해갔다.
 
기계적인 등급 분류는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 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고 장애인을 시설로 보내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장애인 시설은 장애인을 방에만 가두고 강제노동, 성추행 등을 일삼는 '지옥'이었다. 그렇기에 장애인들은 거리로 나와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쳤고 오랜 세월이 지나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를 단계별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는 마치 다음달부터 장애인의 삶이 완전히 바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실질적인 장애인 복지가 출발하는 시간이 다음달 1일부터라는 것이다. 현재의 장애인 지원정책은 아직 헛점 투성이다. 
 
당장 실시될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보면 기존의 의학적 관점을 고스란히 반영한 수준으로 장애를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하는데 '불편하다', '불편하지 않다' 이 중 하나를 고르는 식이다. 식사를 할 때 어느 정도 불편함을 느끼고 어떤 도움을 받아야하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전체를 뭉그그려 불편 유무만을 평가하고 그에 맞춰 장애를 판정하고 있다. 결국 여전히 장애인의 '진짜 불편함'을 보지 않고 점수만으로 평가하는, 30년 전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져야한다는 것도 문제다. 청각장애인은 데시벨로만 중증과 경증 구분을 하게 되어 있어 그 중간에 놓인 사람들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장애등급을 없앤 것이 오히려 청각장애인에겐 불이익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인정조사에 자신들에 해당되는 사항이 없다. '스스로 밥을 못 먹는다'라며 자신을 중증이라고 속여야 겨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이 때문에 장애인들은 지금의 장애인 지원체계가 장애인들을 '싸움판'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형식적인 조사와 나눠주기식 예산 편성으로 장애인들이 서로 더 많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자신들이 더 불편하다고 주장하며 이전투구를 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급기야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25일 브리핑 후 "소위 비법정단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시위를 한다거나 과도한 의견표출들이 있었는데 그런 의도 표출에 정부가 너무 경도되지 말고 대표성이 확보될 수 있는 장애인단체 중심으로 의견을 수렴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그동안 장애인 인권운동을 해 온 단체들을 '비법정단체'로 폄하하고 장애인단체의 분란을 조성하는 발언을 해 장애인 운동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금 보건복지부는 자화자찬이나 '예산 늘리겠다'는 틀에 박힌 약속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장애인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실로 이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짚어나가야한다.
 
'일일이 장애인들을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정책을 세우나?'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장애인의 욕구를 숫자놀음으로만 평가하는 방식이라면 실효를 전혀 거둘 수가 없다. 힘들더라도 해야한다. 진실로 장애인을 우리의 이웃으로 생각하고 함께 살아야하는 동반자라고 생각한다면, 진실로 보건복지부가 '복지를 위해 애쓰는 곳'으로 인식되고 싶다면 말이다. SW
 
ets@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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