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착취는 모호한 법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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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착취는 모호한 법에서 시작됐다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07.1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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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3개월 간 모 대기업 계열사에서 채용전제형 영업직 인턴으로 근무했다. 원어민 수준의 고스펙을 요구하는 해당 대기업은 A씨를 비롯한 고급인력의 청년들을 인턴으로 고용했으나 회사는 A씨에게 계약 만료 당일 채용 탈락을 통보했다. 사진 / 시사주간 DB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청년 구직자들이 정규직 채용이라는 희망으로 착취당하는 인턴 실태가 여전함에도 법은 이들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하지 않고 있다.

 

A씨는 지난 3개월 간 모 대기업 계열사에서 영업직 인턴으로 근무했다. 미국 대학교 출신의 유학파에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을 요구할 정도로 고스펙, 고학력자를 요구하는 해당 대기업은 초봉도 높아 인턴마저 최대 50대 1의 경쟁력을 보일만큼 구직자들에게 인기 있는 기업으로 이름나있다. 

 

A씨를 비롯한 고급인력의 청년들 중 10명도 채 안되는 인원이 채용전제형 인턴으로 입사됐다. 인사팀은 A씨에게 “인턴 과정을 거치면 정규직 입사가 가능하다”며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A씨에게 다가온 것은 정규직 채용이 아닌 계약 만료였다. 그것도 계약 마지막 날 인사팀 관계자는 구두로 A씨에게 계약만료이니 더 이상 출근하지 말라고 말했다. A씨뿐만 아니라 인턴 동기들 또한 계약 만료에 이르자 달마다 회사를 나왔다. 정규직 채용은 단 한건도 없었다.

  

“이곳은 당연히 채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보통 인턴에게는 기본적인 것만 가르치거나 문제 발생 염려를 위해 최대한 실무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기는 대기업임에도 실무를 줘 채용될 것이란 확신을 받았다. 다른 친구들 모두 인턴 3개월간 회사 매출,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진심으로 열정을 다해 근무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런 식으로 3개월 간 사람을 쓰고 내보내는 것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 

 

회사는 그나마 대기업이기에 근로기준법에 저촉되지 않을 만큼의 최저임금만 지급했다. 정규직 채용 희망해 야근·추가수당 요구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것보다 A씨를 압박한 것은 다른 인턴들의 계약 만료를 보며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나’라는 심리적인 불안감이었다. 정규직 채용에 탈락한 A씨를 ‘문제 있는 인간’으로 자책하도록 만든 것은 인턴을 쓰고 버리는 회사였다. 

 

A씨는 “기업은 법의 테두리에서 젊은 친구들의 시간과 열정을 빼앗고 이용한다. 취업이 힘든 시기에 열정을 바치는 청년들의 간절함을 이렇게 대하는 것은 두 번 울리는 것”이라며 “최소한 전환 평가 1달 전에는 채용여부를 통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한 법제화가 전혀 없어 저와 같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본다”고 하소연했다.

 

무급 인턴을 운영하는 등 기업들의 인턴 착취가 사회 문제로 되자 고용노동부는 2016년 2월 ‘일경험 수련생에 대한 법적 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턴과 같은 여러 이름의 일경험 수련생은 여전히 근로기준법에 명확히 규정돼있지 않다. 사진 / 뉴시스

◇ ‘일경험 수련생 가이드라인’과 열린 인턴 착취

 

A씨가 겪은 이러한 인턴 착취는 청년 착취의 다른, 또한 오래된 말이다. 대학교 졸업 후 취업난을 겪는 청년들은 구직시장에서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스펙쌓기’라는 몸값 불리기에 나섰다. 반면 기업은 이들에 대한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의사 영역에만 있던 인턴을 도입했다. 그 결과는 일반 근로자처럼 연장·과다 근로를 시키면서 월급은 적게, 심하면 아예 주지 않는 이른바 ‘열정페이’ 등 청년 노동력 착취였다. 

 

인턴 착취 문제가 대두되자 정부는 2016년 2월 ‘일경험 수련생에 대한 법적 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인턴, 실습생, 견습생, 수습생 등 고용노동부가 규정하는 ‘일경험 수련생’을 착취할 시 근로기준법 등에 따라 징역·벌금의 강력한 처벌을 부과하도록 했다. 

 

가이드라인은 이와 함께 수련생이 받아야 하는 교육 프로그램 없이 업무상 필요에 따라 수시로 투입시키거나 특정시기·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에 근로자를 대체해 활용하기, 노동력 활용을 주된 목적으로 지나치게 단순·반복적인 교육·훈련 등도 처벌에 포함시켰다. 이외 상시 근로자보다 10%를 초과해 모집할 수 없고 6개월 이상 금지, 1일 8시간·주 40시간 근무 및 연장·야간·휴일 근무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법이 아닌 가이드라인 수준으로, 그마저도 권고 수준에 그쳤다. 급여 등 중요 항목 이외에는 강제성이 없어 A씨와 같은 청년 인턴들의 정규직 희망 고문이 여전히 가능케 하고 있다. 사실상 법은 최저임금 권리 외에는 실질적인 인턴 착취를 방관하고 있는 꼴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인턴을 보호하기 위해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에서 인턴은 근로자가 아닌 존재로 본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실질적인 근로 형태가 근로기준법에 해당할 시 현행법을 적용받도록 한다고는 했으나 그 주체는 여전히 근로자가 아닌, 법에 없는 신분이자 이를 위한 규정조차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턴은 여전히 이러한 법적 신분이 규정되지 않은 ‘이름 없는 존재’로 남아있다. 반면 정부는 이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지 않아 최저임금 문제 이외에는 다른 인격 손상은 가능하도록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사실상 인턴 착취를 방관하고 있다. 특히나 다년 간 취업 한파가 계속되자 구직시장에서 기업은 채용전환·채용검토라는 단어로 청년 구직자를 유혹하고 인턴으로 쓰고 버리는 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로스펄린은 2011년 책 ‘청춘 착취자들(Intern Nation)’를 통해 “20세기 말 탈산업화 시대로 한시적·조건적 노동력을 원하는 ‘가변적 노동력 수급체계’로 인턴이 인기를 끌었다”며 현대 자본주의를 ‘청년의 피로 연명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라 비판했다. 작가는 “인턴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실질적인 노동자”라 규정했다. 사진 / 뉴시스

 

◇ 모호한 법이 방관하고 만든 헐값 인력 ‘인턴’

 

해외라고 인턴 착취 문제에서는 다름이 없다. 이미 이 같은 인턴 착취 문제는 구직시장에서 청년들을 오래도록 괴롭히고 있다. 영국 국세청은 지난해 2월 열정페이, 무급 인턴을 운영하는 550개 이상 업체에 대해 경고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인턴 착취 문제는 이미 미국 사회 내 주요 문제 중 하나로 인식됐다. 2011년 작가 로스 펄린이 펴낸 ‘청춘 착취자들(Intern Nation)’에서 작가는 “‘인턴십’이란 말은 대부분 단기간에 공짜 혹은 헐값으로 허드렛일을 도맡아줄 인력을 구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인턴이라는 단어가 지닌 포괄성 때문에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탓”이라며 “대학과 긴밀한 유대를 가진 업주일수록 인턴에 교육적인 요소나 학문적인 색채를 가미·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나 대부분은 이와 먼 것이 현실”이라 꼬집은 바 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청년 인턴 착취의 원인에 대해 작가는 “20세기 말 탈산업화 시대로 한시적·조건적 노동력을 원하는 ‘가변적 노동력 수급체계’에 인턴이 인기를 끌었다. 인턴과 유사한 이름에는 지금도 여전한 비정규직, 계약직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이보다 진화한 형태로 파견직, 라이더 등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직을 만들었다.

  

19세기 의과대학의 ‘인턴십(Internship)’에서 시작된 인턴은 산업이 이름을 빌려 청년 노동 착취를 가리는 모호한 이름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 때 노숙하는 유엔 인턴으로 알려진 데이비드 하이드의 사연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현실이라 볼 수 있다. 

 

로스 펄린은 책을 통해 인턴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실질적인 노동자라 규정하고 이를 위한 인턴 권리장전을 실었다. 더불어 인턴에 대한 법률 및 제반 규율의 모호함, 사법 당국의 통일되지 않은 인턴에 대한 해석 등 실태를 지적하고 나섰다.

  

인턴 착취를 방지하기 위해 일각에서는 아예 인턴이란 단어 사용 자체를 금지시켜 실질적인 이들 청년 근로자들이 차별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아니면 최소한으로 별도의 인턴법을 제정해 인턴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단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통된 점은 모호한 법과 규정이 인턴 착취라는 그늘을 만들고 이를 못 본 체 하도록 방관한 실태라 볼 수 있다. A씨와 같은 실태가 만연해있음에도 법은 여전히 이들을 규정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 펄린은 책에서 청년 인턴을 “청년의 피로 연명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이라 비판했다. 인턴은 더 이상 정규직이나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일경험’이 아닌, 19세기부터 지속된 청년 노동 착취의 오래된 이름이라 볼 수 있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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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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