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편한 것은 미녀의 나라인가, ‘미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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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불편한 것은 미녀의 나라인가, ‘미녀’인가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07.29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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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왼쪽부터 우크라이나 가수 겸 배우인 티나 캐롤(Ти́на Ка́роль), 팝 가수 나디야 도로피예바(Надежда Дорофеева), 영화 ‘007 퀀텀 오브 솔러스’에 출연한 영화배우 올가 쿠릴렌코(Ольга Куриленко). 사진 / 페이스북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한국인과 결혼한 우크라이나인 지인에게 ‘우크라이나는 미녀의 나라’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단번에 “자랑스럽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그녀의 표현 속에는 문화적·민족적으로 아름다움이란 보편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칭찬에 대한 감탄과 자긍심만이 깃들어 있었다.

반면 그 대답에서 2010년 호주 SBS 다큐멘터리서 언급된 ‘서방의 태국’과 같은 국가 차별적 비하나, “여성을 성적 상품으로만 본다”는 그릇된 단정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한류를 존중하는 외국인으로서 이 같은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외국인 성매매 관광 또한 같은 시기 한국처럼 한 때의 사회 문제였으나 현재는 체감과는 다른 과장된 수준이라 했다. 

그럼에도 “미녀의 나라라는 말이 성매매를 재생산한다”고 부르짖는 주장은 최근 대중 사이에서 돌고 있다. 그리고 그 말을 성매매·국제결혼과 인신매매끼리 연관시켜 인권 침해의 근거로 낙인화 하려는 시도 또한 보인다. 얼핏 듣기에 그럴싸한, 일리 있어 보이는 성차별 비판은 2011년에서 그친 언급과 함께 그 레토릭 속 전제와 연결 짓기가 과연 합당한지 살필 필요가 있다. 

국제연합(UN) 보고서는 우크라이나의 경우 인신매매 및 이를 통한 성 착취가 소비에트 연방 독립 이후인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오랜 인플레이션 등 경제적 조건과 겹쳐 매우 극심한 수준이었다고 보고했다. 이와 함께 상대적 물가 차이와 사법 당국의 미미한 처벌로 우크라이나는 성매매 관광, 국제결혼 사업이 한 때 이목을 끌었다. 페멘(FEMEN)과 같은 급진적 페미니즘 단체의 반동 또한 한국으로까지 퍼지기도 했다. 

2018년 12월 국제연합(UN) 국제이주기구(IOM)에서 조사한 ‘우크라이나 인신매매 통계’ 자료 중 일부. 사진 / IOM

하지만 인신매매를 통한 성매매 실태가 2020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UN 국제이주기구(IOM)의 우크라이나 인신매매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0~2018년까지 확인된 인신매매 피해자는 1만5262명이다. 

반면 유형별 인신매매로는 성 착취의 경우 2004~2006년 65%로 최고점을 찍던 수치가 2009년 51%를 기점으로 하락세를 띄었다. 2017년 6.8%로 크게 감소한 통계를 볼 때, 잡히지 않은 미확인된 수치를 추정한다 해도 전체적인 통계의 방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줄어드는 성 착취 유형과 달리 강제노동은 2008년 49%에서 증가세를 띄다 2017년 90%를 기록했다. 인신매매의 남녀 비중 또한 2004년 △남성 14%, △여성 86%이던 수치는 이후 역전세를 보이다 2018년 △남성 61%, △여성 39%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강제노동 인신매매는 러시아에 집중돼있었다. 

성매매와 국제결혼은 부국과 빈국 어디에나, 조건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 있는 곳에 존재한다. 공급과 선택도 마찬가지다. 베네수엘라처럼 경제 불황, 정치 혼란이 닥칠 때 해당 사업들은 일반적으로 높은 공급을 보인다. 남녀에 차별을 두려함이 아닌, 국가 시스템이 붕괴될 수준 속에서 빈곤 여성은 상대적·절대적으로 생존 위기 상태에 놓이기에 ‘선택 아닌 선택’으로 몰리는 것 또한 묵인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일본의 버블경제와 같은 호황기, 한국·호주처럼 선진국으로의 비자 관문 진입이 낮은 시기, 독일·네덜란드처럼 성매매 합법화 등 호황과 조건을 가질 때도 두 사업은 크게 활성화 된다. 국제결혼 중개업 또한 부적격 남성 배우자 문제 때문에 쉬이 매매혼으로 격하 당한다. 하지만 배우자 검증에 있어 국가적 수준의 엄격한 보장이 없는 조건 아래서는 모든 국제결혼을 ‘빈곤을 이용한 성 착취’라고만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남성 권력이 빈곤으로 성 착취를 한다”는 주장이 언급되기 수세기 전,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소설 ‘레미제라블’의 서문에서 “빈곤에 의한 남성의 추락, 기아에 의한 여성의 타락, 암담함에 의한 어린이의 위축이 해결되지 않는 한-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같은 책은 무용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책을 통해 정치·경제·사회적 현상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간적 몰락을 가져온다는 진리를 말하고자 했다. 반면 21세기에는 이러한 몰락의 원인을 현상 파악이나 국가적 책임이 아닌, 성별 구분에 따른 가부장·남성에게 돌린다는 발상이 사상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소설에서 팡틴을 비극적으로 추락시킨데 가장 일조한 이는 그녀의 미모를 혐오한 다른 여성들이었다.

현대에 유행하는 정치 운동 중 하나인 ‘정치적 올바름(PC)’은 주로 말을 통제하는 힘에 주목한다. 그렇기에 대중에게 그릇된 사회 인식이나 오류를 확대 재생산하는 말이 나올 때는, 그 논리 그대로 무엇이 정말 대중을 불편하게 만드는지 검증하지 않을 수 없겠다. 불편한 것은 ‘미녀의 나라’라는 레토릭 속 혐오와 비뚤어진 추상일까. 아니면 ‘미녀’ 그 자체일까.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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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라는 낙인을 멈춰라 1970-01-01 09:00:00

기자님 존경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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