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의 볼모가 된 추경, 그 ‘표류’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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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의 볼모가 된 추경, 그 ‘표류’의 기록
  • 김도훈 기자
  • 승인 2019.07.2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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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국회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텅 비어있는 본회의장. 국회 공전 속에서 국민의 삶이 달린 추경이 96일째 표류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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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김도훈 기자] 추경예산안이 96일째 표류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2000, 107일간 통과되지 못한 '역대 최장 국회 표류 기록' 돌파는 물론 무산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각종 정치 문제와 이를 둘러싼 정당들의 힘겨루기 속에서 추경은 계속 볼모로 잡혀있었다. 추경이 볼모가 됐다는 것은 곧 우리 경제, 국민의 삶이 볼모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직급여 지급자 및 지급액 증가, 청년 추가고용장려금 확대, 실업자 훈련지원 예산 추가 편성, 영세사업장 노동자에 미세먼지 마스크 지원,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확대, 긴급생계비 추가, 포항 지진피해 극복 지원, 노인일자리 확대, 재난 대응 시스템 강화, 강원 산불 피해 복구 등이 이번 추경예산안에 담긴 내용이었다.

425일 국회에 제출된 이 추경안은 선거제와 검찰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면서 심의조차 시작하지도 못했다. 자유한국당은 이 추경안을 '총선용 선심성 추경'이라고 비판하면서 재해 추경만 처리하자는 입장을 밝히며 버텼다.

페스트트랙 조치가 국회 내 격한 몸싸움 끝에 종료됐지만 후유증은 지속됐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항의하며 아예 국회 밖으로 나간 것이다. 게다가 국회에서 이를 논의해야할 국회 예산결산위원회가 5월말 임기가 만료되면서 추경안은 다시 표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추경은 '타이밍과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추경안 처리가 지연될수록 효과가 반감되고 선제적 경기대응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다. 당정이 국회 설득을 위해 더욱 힘을 모아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또 20일 열린 수석 보좌관회의에서는 "한 달이 다가오도록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이번 추경은 미세먼지, 강원도 산불, 포항 지진 등 재해 대책 예산과 경기 대응 예산 등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것 하나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언급하며 추경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호프 회동'을 하며 국회 정상화의 물꼬가 트일 것처럼 보였지만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민주당의 사과와 철회를 요구했고 강효상 한국당 의원의 '한미정상 간 통화내용 유출' 논란이 불거지면서 다시 여야 대치와 국회 정상화 불발로 이어졌고 5월 추경 통과도 그렇게 넘어갔다.

65일 문재인 대통령은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추경안은 미세먼지 정책을 속도있게 추진하기 위한 미세먼지 예산이 포함돼 있고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예산도 중요하게 포함돼 있다. 2200여억원의 예산을 외부에서 일하는 시간이 긴 노동자들과 저소득층, 어린이와 어르신을 위한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설치에 사용할 예정이다. 이 자리를 빌려 국회의 협력을 다시 한 번 간곡히 당부한다"며 국회 정상화와 추경 통과를 다시 촉구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618일 의원총회에서 추경안을 '총선용',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면서 "지금 경제 정책 기조 하에서 재정 확대는 오히려 대한민국 경제를 완전히 몰락시킬 수 있다. 이런 추경을 하면 나라가 망하지 않겠나"라며 추경안 통과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624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시정연설을 통해 "이번 추경안은 내외의 경기하방 압력에 대응해 경제 활력을 살리고,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자 편성했다. 국가경제 위축을 막고 국민의 고통을 덜며 국민의 안전을 높이는데 여야가 다른 마음을 갖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며 추경안 통과를 촉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가 다시 열렸지만 추경은 다시 볼모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추경 통과가 먼저라고 주장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 북한 동력선 사건, 교육부의 교과서 수정에 대한 국정감사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와 예결위가 다시 결성되면서 추경 심사가 시작됐지만 원안을 유지하자는 여당과 대폭 삭감하자는 야당의 입장이 맞서면서 제자리걸음만을 반복했다. 여기에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사건 등의 책임을 물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해임을 촉구하던 자유한국당은 정경두 장관 해임건의안과 추경예산안을 연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718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만났다. 일본의 수출 규제 대응 등을 논의했지만 여기에서도 추경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날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내일 추경을 처리하고 대일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키려면 여당이 국방장관 해임안을 양보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19일 여야 협상 불발로 본회의가 열리지 못했고 추경 처리는 또다시 미뤄졌다. 7월 임시국회가 열리기는 하지만 여전히 추경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 ‘추경안보국회라는 여야의 목적이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고 서로가 추경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맞서고 있어 또다시 헛공방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이 계속 '조건부 통과'를 주장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쟁과 대치의 볼모가 되어 100일이 가깝게 표류하는 추경안의 모습은 국민의 삶보다는 정쟁에서 이기는 것에만 몰두하는 우리 정치권의 후진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주고 있다SW

k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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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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