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근무복으로 본 ‘반바지’를 입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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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 근무복으로 본 ‘반바지’를 입을 권리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07.3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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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현장에서 뛰는 집배원은 무더위와 높은 습도 등 계절, 환경의 영향을 받는 직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반면 우정본부의 복장 규정 및 반바지에 대한 사회 인식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실정이라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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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현지용 기자] 한여름 더위, 습도와 싸우며 수천 통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이 정작 근무복은 복장 규정에 따른 긴바지를 입어야 해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한낮의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치솟다 다시 폭우가 겹치는 등 올해 여름 또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매우 덥고 습한 날씨다. 높은 습도로 입은 옷 또한 땀에 젖기 쉬운 날씨라 반바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특히 몸을 쓰는 노동자일수록 더위로 인한 체력 저하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열사병 등 온열질환을 막는데 통풍이 잘되는 반바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반바지를 입지 못하는 실정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구에서 택배 업무로 분주한 집배원 A씨도 그러했다. 본지 기자가 왜 반바지를 입지 않느냐고 묻는 질문에 바쁘게 배달 업무를 하던 A씨는 “회사에서 입지 못하게 한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다만 그런 그도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는 듯 “우리도 입고 싶다. 땀 차는데 왜 덥지 않겠느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A씨와 같은 집배원은 체력적 영향을 많이 받는 직업 중 하나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 때문에 과로 및 뇌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집배원만 2010~2018년 동안 82명에 달한다. 2012년 기준 경기 안산 지역의 우편물 배달원 1인이 하루에 배달해야하는 물량만 2120통에 달했다. 일평균 우편물 배달은 하루 평균 약 1200건, 도심보다 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농촌도 일평균 800건에 달한다. 

그렇기에 계절에 따른 영향도 많이 받는 직업이 집배원이다. 높은 온도와 습도로 체력저하가 심각할 수준이라 긴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나 우체국 복제세칙 때문에 더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실정이다. 근무복의 소재 문제로 땀 배출의 효율을 논하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폭염과 높은 습도 속에 긴바지를 착용해야 한다는 강제성은 업무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집배원 복장 규정에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집배원들도 이를 의식하고 이의제기를 하고 있으나 우정본부는 근로자 관리 규정과 복제세칙에 따라 ‘품위유지’, 안전사고 방지를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집배원의 반바지 근무복을 불편해 하는 고객 불만이 민원으로 날아올 것을 염려하는 것도 있다. 지난 26일 폭우에 바지 밑단이 흠뻑 젖도록 뛰어다니던 집배원 B씨는 “한번은 더워서 바지 밑단을 걷었더니 ‘다리털이 보기 싫다’고 핀잔주던 고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집배원 근무복이 긴바지 착용 등 일부 부분에서 제한이 있는 반면 호주와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의 우체국은 집배원 근무복에 긴바지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사진 / 보스턴글로브

국내 집배원이 이런 반면 미국과 호주 등 해외의 우체국은 집배원 근무복에 한국과 같은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외국에서 집배원 노동자의 복식에 제한을 두지 않는 이유는 근무복에 대한 접근 시각이 오로지 노동자의 권리로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룹 DJ DOC의 1997년 히트곡인 ‘DOC와 함께 춤을’이란 노래에서는 청바지를 입는 직장인과 반바지를 입는 학생을 통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고 말한다. 직장인의 근무복에 대해 언급한 노래는 20여 년이 지난 최근에야 의식화돼 나타나는 모양이다. 경기도청은 이달부터 다음 달 동안 시범적으로 공무원 반바지 착용을 제안해 허용케 하고 있다 

오늘날 반바지를 원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업무능률 향상이라는 기능적 측면이 주된 내용이나, 무엇보다 당위적인 것은 노동자에게 필요한 근무복을 입을 권리 보장이 이뤄지고 있느냐는 측면이다. “계절과 환경에 따라 노동자가 영향을 받는다면 마땅히 근무복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노동과 근무복에 대한 접근 시각이 개선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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