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강을 건넌 7군단과 “의지 없는 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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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강을 건넌 7군단과 “의지 없는 용사들”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08.11 18:52
  •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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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당시 임팔작전에서 무능한 지휘로 일본제국 육군 제15군을 궤멸시킨 무타구치 렌야 중장. 사진 / 위키백과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무능하면서 성실한 상관이 안하무인(眼下無人, ‘눈 아래에 사람이 없다’는 말로 방자하고 교만해 다른 사람을 업신여김)과 만나면 참극을 부른다.

무능한 간부의 위험성은 그 폐해가 매우 극심하다고 고대부터 경고돼왔다. 중국 전국시대 명장인 오기는 오자병법에서 “무능한 지휘관은 유능한 적보다 더 무섭다”고 말한 바 있다. 무능한 지휘관의 지휘는 군의 사기 저하 및 물적·인적 손실뿐만 아니라 전국과 국가에 미치는 폐해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제2차 세계대전기 독일의 장군 쿠르트 폰 함머슈타인 에쿠오르트 남작의 지휘교범에서 더 자세히 분류됐다.

“나는 내 장교들을 영리한, 게으른, 근면한, 멍청한 네 부류로 나눈다. 대부분 이중 두 가지 특성을 함께 갖고 있다. ‘영리하고 근면한 자’는 고급 참모 역할에 적합하며, 전 세계 군대의 90%를 차지하는 ‘멍청하고 게으른 자’는 정해진 일이나 시키면 된다. 어떤 상황이든 대처할 수 있는 ‘영리하고 게으른 자’는 최고 지휘관으로 좋다. 하지만 ‘멍청하고 부지런한 자’는 위험하므로 신속하게 제거해야 한다.”

지난 8일 군인권센터 기자회견으로 드러난 7군단 장병들의 실태는 위의 말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한 명의 최고 지휘관이 압박한 특급전사 달성 강요는 휘하 부대와 간부를 거쳐 가장 아래의 장병들에게 환자 행군까지 강행토록 만들었다. 폭염 속 장병들의 땀과 신음은 사회와 격리된 군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수개월간 묻혔다.

그럼에도 해당 지휘관은 사단장 시절부터 센터로부터 비판받은 이 방식을 유지하며, 그 묻힌 신음들을 발판 삼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을 역임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삼정검 수치(綬幟)를 손수 받는 등 3성 장군으로 진급했다. 2011년 육군 훈련병의 훈련 중 사망사건 사례들은 인사과정에서 잊혀진 것처럼 보였다.

2016년 7월 7일 “민중은 개돼지” 등 안하무인적 발언으로 국민적 분노를 받은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사진 / 뉴시스

이 특급전사 강군양성 밀어붙이기는 가축 등급별 하자표시 마냥 게토·수용소 유대인에 대한 ‘다윗의 별’ 달기처럼, 아픈 장병의 목에 환자명찰 걸기로 최고조를 찍었다. 7군단 최고 지휘관에게 특급전사는 군인으로서의 본분과 의무를 다한 사람이었으나, 그렇지 못한 장병에게는 황국신민으로서의 본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비국민’ 마냥 환자 목걸이라는 공포적인 낙인을 찍었다.

신음과 함께 묻힌 것은 기본권에 대한 몰지각과 인간에 대한 존중이었으며, 동시에 드러난 것은 장병을 소모품으로 보고 환자를 꾀병이라 부르는 ‘지록위마’·‘안하무인’적 시각이었다. 

특히 군 복무자 및 장병 부모 등 시민사회 여론을 가장 들끓게 만든 것은 그가 어느 교육훈련 당시 말한 것으로 전해진 “요즘 입대병력의 80%는 의지가 없는 용사들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과연 국가의 미래가 될 수 있나”라는 망언이다. 징병제 국가, 초라한 장병 대우라는 단상에도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군 사기 저하, 군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발언을 당당히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군 전·현역자들의 깊은 분노는 경험을 통해 군이라는 폐쇄성 짙은 ‘작은 사회’를 악용하고, 계급에 따라 제재 없이 왕처럼 군림할 수 있다는 특성을 깨달은 것에 기반하고 있다. 더욱이 솔선수범과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할 군 최고 지휘관이, 오히려 이를 악용하고 불이익 없이 망언을 했다는 것은 군에 대한 깊은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는 3년 전 나향욱 전 교육부 관료가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으로 국민통합에 찬물을 끼얹고, 관료들의 신뢰를 추락시키며 대중의 분노를 일으킨 사건과 겹친다. 또한 이 같은 권위주의·계급주의적 사고관은 한국사회에 돌고 있는 “의지·정신력·근성·노력 부족”과 같은 그릇된 사고관처럼, 일본제국군이 부르짖던 ‘야마토 정신’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경제 불황에서 청년실업의 원인을 노력 부족으로 보는 것과, 징병제 국가에서 군 복무 불만을 의지 부족으로 보는 것이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동 가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이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학정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를 상징하듯, 그릇된 사고관을 가진 지도자는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그 횡포는 구르는 눈덩이보다 크게 불어나고 속도는 폭주하는 기관차보다 빠르다는 진실을 대중은 알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호전적인 전쟁광으로 알려진 조지 S. 패튼 장군을 그린 1970년작 영화 ‘패튼(국내명 ‘패튼 대전차 군단)’ 중 패튼 장군이 야전병원에서 PTSD 환자에 폭행을 가한 장면. 사진 / 유투브 캡처

전쟁광이란 세간의 평가마저 스스로 인정한 조지 S. 패튼 장군은 그의 호전성과 과격한 악명에도 유능한 지휘로 장병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 스스로도 “흔히들 상관에 대한 충의를 말하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부하에 대한 충의”라며 인명경시를 일삼던 일본제국군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그도 PTSD 장병 폭행사건, ‘보너스 군대(Bonus Army)’ 진압 사건으로 안하무인적 시각의 폐해가 어느 정도까지 이를 수 있는지 보여줬다. 

군에 대한 장병의 사기와 국민의 신뢰는 ‘사랑이라 착각하는 채찍’이 아닌, 참된 훈련과 북돋음, 공평한 심판 및 정당한 대가에서 나온다. 하지만 실태는 캡틴아메리카 수준의 허황된 목표 설정, 숨기기 급급한 부조리 실태, 미약한 방산비리 처벌, 최저임금보다 낮은 월급수준으로 점철돼있다. 여기에 군인에 대한 일말의 존중심마저 훼손하는 극단주의자들의 활보와 군 최고 지휘관의 의지 망언으로 군에 대한 사기와 신뢰는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7군단의 실태는 속된 말처럼 강을 건넜다. 다만 그것이 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의 13군단이나 라인 강을 건넌 패튼 장군의 제3군과 같은지, 아니면 친드윈 강을 건넌 무타구치 렌야의 제15군과 같은지 판단이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충분히 식별 가능할 만큼 선명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먼저다”라며 적폐청산을 부르짖는 현 정부는 대중의 말을 경청할지, 아니면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씁쓸한 농담마저 입막음 하는 ‘치킨호크(Chicken hawk, 군 복무 경력이 없으면서 전쟁 등 극단적 군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자를 일컫는 말)’들의 말을 경청할지, 7군단장에 대한 향후 행보가 이를 증명하겠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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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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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굿 1970-01-01 09:00:00

기자님 글 잘 쓰신다
굿.

7군단장 옷 벗어야함.

좋은기사 1970-01-01 09:00:00

똥별이 말한 "요즘 입대병력의 80%는 의지가 없는 용사들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과연 국가의 미래가 될 수 있나"
대부분의 현역병은 자발적 의지가 아닌 끌려오는 징병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의지가 없다며 의지를 갖도록 강요한다.
미군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쥐꼬리만한 월급과 식단, 처참한 대우들을 주면서 미군 수준의 체력을 요구한다.
진짜 썩어 빠진 똥별이다.

마음 1970-01-01 09:00:00

기자선생님 기사가 타 신문 보다 선정적이지 않으면서
냉철 한 비판이 정말 속이 다 시원 합니다 ~~
7군단장 미친 짓 그만 중지 하고 병사들과 국민께
사과 하세요~~~~!!!

닉네임 1970-01-01 09:00:00

지금의 7군단 문제를 아주 객관적으로 써 잘 주셨네요
아들을 7군단 보내고 매일 가슴을 쓰러내리는 부모들이 할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슬픈 현실입니다
부디 7군단 문제에 더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이러한 병폐들이 사라질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적폐청산 1970-01-01 09:00:00

공감이 가는 기사 입니다.
이것이 인권침해고 진정한 적폐청산 대상 아닌가요? 청와대는 뭐하나 이런자를 해임 않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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