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규제’ 풀어달라는 기업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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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규제’ 풀어달라는 기업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잊었나?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9.08.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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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환경단체,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화평법, 화관법 등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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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임동현 기자] 기업들이 일본의 수출 규제 타개 및 소재 국산화 등을 이유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의 완화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화학물질 규제가 필요한 시점에서 경제 상황을 이유로 이를 완화한다면 또다시 시민의 희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환경부 역시 원칙을 지켜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화평법은 신규화학물질 또는 연간 1t 이상 제조, 수입되는 기존 화학물질의 유해성 심사를 의무화하고 기업에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입증할 의무를 지운 법이며, 화관법은 사업장 내 화학물질이 사업장 밖에서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유해물질 관리인력을 보충해 화학물질의 시설관리를 강화하도록 한 법이다. 이 법은 영유아들의 사망을 야기한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시민사회와의 협의를 통해 제정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 법들의 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30대 기업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총수들은 "신규 화학물질 생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화평법과 화관법의 완화를 요구했고 역시 지난달 열린 '중소기업환경정책협의회'에서는 "화관법에 따라 유해화학물질 취급 시설 배치 설치 관리기준(413)을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일괄 적용해 영세 중소기업들의 시설 개선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면서 역시 완화를 요구했다.

또한 손경식 경총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두 법을 '기업을 옭아맸다'고 표현하며 규제를 풀 것을 요구했고 경총 관계자들은 '화학산업의 직격탄', '발전의 걸림돌' 등으로 이 법을 규정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일관적으로 제재를 하고 있어 중소사업장은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이 많은 중소기업들의 생각이다. 등록 물질 수가 늘어나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전문 인력 채용도 어려운 현실이다. 당장 기술 개발을 하려면 화학물질을 사용해 여러 시험을 해야하는데 그 화학물질을 모두 신고하고 등록해야한다. 국민 안전을 생각하는 것은 동감하지만 점진적으로 강화시켜나가야지 너무 급진적으로 강화시켜 놓고 무조건 지키라고만 한다면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과 노동계는 '규제 완화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들은 20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활화학제품의 생산, 판매 과정에서 국민의 생명을 잃은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사회적 참사를 겪었고, 기업의 안일한 화학물질 관리가 그 주요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참사의 책임을 져야하는 기업이 오히려 화학물질관련 규제를 완화해 화학물질 정보 생산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기업들을 비판했다.

이들은 "낮은 기업의 역량과 제도의 이해도 등의 문제로 화학물질 등록과 평가 자체가 어렵다는 산업계의 볼멘소리도 규제 완화를 통해 풀어갈 것이 아니라 산업활동 기반과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직접적인 지원 제도를 보완해 해결할 문제다. 기업의 무책임과 무능을 정부와 규제 탓으로 돌리기보다 스스로의 노력을 약속하고, 그 노력을 실행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보다 명확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경제단체들은 화평법, 화관법이 규제라고 목소리를 내지만 실제 기업들을 보면 이행 과정을 잘 따라온 경우가 많다. 기업들의 의견을 보면 이 법을 시행하면서 생산량이 어떻게 감소됐는지, 수입이 어떻게 줄었는지, 무엇이 문제가 됐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처음 법이 제정됐을 때부터 반대한 내용을 반복하고 또 반복할 뿐이며 근거도 출처도 분명하지 않은 정보로 왜곡하고 있다. 불화수소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수입이 더 경제적이어서 그동안 수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입이 안 되니까 이를 규제 완화로 풀겠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해서 만들어낸 이 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결국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환경부는 '화평법, 화관법의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기업의 규제 완화 요구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한 법이기에 원칙과 취지를 절대 훼손할 수 없다. 일본 수출 규제라는 갑작스런 문제가 나오면서 애로사항을 바탕으로 심사시간 단축 등 대책을 마련했는데 기업들이 아예 이 제도를 없애자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화평법 때문에 기술개발이 어렵고 소재 국산화가 어렵다고 하는데 R&D(연구개발)용 물질의 경우는 현재도 등록이 면제되고 있고 EU보다 면제규정도 완화되어 적용하고 있다. 국민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법의 원칙을 생각해야한다"고 밝혔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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