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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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다"
  • 시사주간 편집국
  • 승인 2019.09.02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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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엽 대안정치연대 임시대표가 최근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철회를 촉구했다고 한다(본지 826일자 ‘[현장스케치] 유성엽 "썩은 나무로 조각 못해" 조국 '지명철회' 촉구기사 참조)

매우 재미 있는 비유다. 사실 이 말은 논어에 나오는 말로 공자의 제자 재여가 낮잠을 자는 등 게으름을 피우자 썩은 나무는 다듬지를 못하고, 썩은 흙으로 만든 담장은 흙손질을 못한다(朽木 不可彫也, 糞土之牆 汚也)’고 핀잔을 주는 장면에 나온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자택을 나서며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 / AP


이 글귀의 의미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의미화된다
. 시간 낭비를 썩은 나무나 더러운 흙 담장에 비유한 것이라는 주장과 모든 사물은 근본적 정신자세 확립이 중요하다는 의미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유성엽 대표의 말은 아마도 썩은 나무를 부패한 공직자로 지적한 것이라 여겨진다. 썩은 나무(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로는 조각을 못하고 더러운 흙으로 만든 담장(법무부)은 손질할 수 없다는 뜻인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온갖 의혹과 실정법 위반혐의로 수사대상이 된 사람이 손질을 하겠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우매한 짓으로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될 것이 뻔하다. 청와대와 여당, 유시민,이재명 등 친여세력, 마침내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까지 조국 수사팀에게 딴지를 걸고 나섰다.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공자는 또 옛날에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행동을 믿었지만, 지금은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행동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聽其言而 信其行, 聽其言而 觀其行)’라고 했다. 조국 후보자가 그동안 타인에게 내쏟았던 비수같은 비난이 부메랑 되어 돌아오고 있다. 문대통령이 과거 조국 후보자의 행동을 믿고 기용했다면 이제는 말과 행동을 더 자세히 파악해 보는 것이 공의(公義)를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조국 후보자는 법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과거로 치면 법가 사상가라 할 만하다. 그러다 보니 법을 잘 알고 그것을 자신에게 맞춰 유용하게 사용하는데는 일가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심성을 다루고 정치의 근본을 이야기 하는 논어의 이런 구절들을 깊이 새기는 면에서는 아무래도 좀 소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우리 옛 명망있는 선비들은 관직이 목적이 아니라 인격수양을 통한 자아발전과 애국애족·충절과 같은 사회적 기능 더 앞세우며 초야에 묻혔다. 지금이라도 옛 성현의 말씀을 잘 새겨듣는다면 그나마 국민들이 입은 내상이 좀 치유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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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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