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불같은 청춘의 열병, 조광조와 조국
상태바
[시류칼럼] 불같은 청춘의 열병, 조광조와 조국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9.19 08:46
  • 댓글 1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 위키백과


누구나 한때 불같은 청춘을 보낸다. 그는 반항아다. 그는 열병을 앓고 있으며 목이 타 식은땀을 흘린다. 숨막히는 열병에서 빠져 나오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소주 한 병 까고 가슴 치다가 담배 연기로 날려버리려 하는 식의 객기로는 어림도 없다. 열병은 자존과 함께 더욱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열병을 잠재우는 길은 나이를 먹는 일 외에 별로 신통한 처방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그 열병을 못고치는 사람도 많다.

 

그것은 이상과 낭만으로만 만나는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 지를 보여주고 있다. 젊은 날의 객기는 끓는 피에서 발진한다. 그는 제임스 딘이며 말론 브랜도요 피터 폰다다. ‘좀 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발랄하다.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정의로운 세상이 있을 수 있을까하고 되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 어느 젊은이든 그러한 세상에 대해 꿈조차 꾸지 않는다면 청춘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조광조가 그랬다.

 

조광조에 대해서 사람들은 정명주의자(正名主義者)라고 부른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느냐고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반드시 명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필야정명호)”하였고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政者正也(정자정야)”라고도 하였다. 조광조는 여기에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현랑과 설치나 정국공신의 삭훈은 정적을 적폐로 몰아가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중종은 남곤에게 내린 밀지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조광조가 현랑과를 설치할 때는 천하의 인재를 얻으려하는 줄 알았으나 이제 생각해 보면 자신의 세력을 확보해 두려는 것이었다(하략)”.

 

조광조들이 정국공신의 삭훈을 청한 것은(중략). 그 화가 나에게도 미칠 것이다.”

 

정명주의는 약간의 해석상 이견이 존재하지만 요즘 흔히 말하는 정의를 앞에 내세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는 어떠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평등한 입장에서 인격, 권리, 기회, 자유, 협동 등과 같은 사회적 기본가치를 누리는 합의에 다름 아니다. 아무튼 정암과 중종은 동상이몽끝에 도학정치를 물

건너보냈다. 끓는 피와 젊은 객기의 결과로 그는 데마고그(선동가 정치인)’로 그치고 말았다.

 

그리스의 시인 아리스토파네스<연회의 사람들>이란 희곡에서 데마고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오늘날 정치꾼들은 학식이 있거나 성품이 올바른 사람들이 아니다. 못 배워 처먹은 깡패들에게나 맞는 직업이 바로 정치인 것이다.”

 

이제 조국 법무장관은 칼자루를 쥐었다. 이제 칼자루가 자신을 향한 비수로 돌아올지 다른 사람을 벨지는 더 두고 볼일이다. 아마도 조광조는 중종이 내치기 전에 먼저 걸어 나갔으면 멋진 정치인으로 인구(人口)회자(膾炙)됐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사약이 잘 듣지 않자 스스로 한 잔 더 청해 마시고 절명할 만큼 자존심도 결기도 있었다. SW 

 

jjh@economicpost.co.kr

 

Tag
#조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조광조 1970-01-01 09:00:00

주장환논설위원님
조국에 대해서 욕망의 386정치인리 뿐이라는 둥
조광조는 절명할 용기라도 있었다는 둥
저주에 가까운 글나부랑이를
논설위원의 이름을 걸고 내보내니
불교에서는 구업이 가장 중하다 하거늘
펜대로 지은 그대의 업보는 어디까지 미칠지
생각해보오

최소한의 논점과 자기주장의 근거도 보이지 않고
똥싸듯이 쓰는 이런글로도 논설위원이라는 이름으 붙여주는
시사주간은 또 어떤 곳인지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