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개 드는 비동의 간음죄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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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개 드는 비동의 간음죄 도입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09.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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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라비 “여성우월주의 악용 커”, 오명근 “‘동의’라는 내심, 기준 제시할 수 있나”
지난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 혐의에 대한 상고심 기각 결정을 환영하는 모습. 사진 / 뉴시스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비동의 간음죄 도입이 다시금 추진되는 모양새다. 안희정 사건과 조국 법무장관 내정으로 여성계에서 추진 목소리가 커지는 반면, 해당 법에 대한 보완책은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비동의 간음죄 신설 관련 법안은 지난해 미투 운동이 터지자,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한 해에만 9개의 관련 법안이 무더기로 나왔다. 이런 가운데 1심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2심과 3심에서 뒤집어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관 성폭력 사건은 여성계에 비동의 간음죄 신설의 목소리를 낼 주요 명분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도 여성단체는 강간죄를 개정해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협박을 동의 여부로 바꿔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208개 여성단체 연합체인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는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성폭력 피해자의 경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성폭력 가해자에게 보복성 역고소의 힘을 실어주는 부정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한겨레는 24일 판·검사, 경찰 등 법조계 전문가의 절반 이상이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여성가족부 연구용역 결과를 전했다. 

◇ 성인지 감수성, 다음은 비동의 간음죄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짓고 있다. 여기서 법은 폭행·협박이 ‘상대방의 항거를 불가능 또는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로 짓고 있어 이를 ‘최협의설’이라 부른다. 여성계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현행 강간죄 구성이 좁은 의미로만 제한돼있고, 이것이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 가해자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폭행·협박 이외의 것이 강간죄를 구성하지 못한다는 문제에 대해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장애인·13세 미만 미성년자·업무상 위계 또는 위력 등에 의한 추행뿐만 아니라,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통신매체음란죄 등 기존 형법보다 폭넓은 기준으로 더 무거운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이 통과될 시, 강간죄의 기준은 더 이상 폭행·협박이라는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 및 성행위 그 자체가 아닌, 당사자의 동의라는 유형으로 바뀐다. 하지만 해당 법이 지나치게 넓은 기준을 가져 이로 인한 폐해가 막대할 것이라는 여론의 우려도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된 우려로는 현행 형법이 강제에 의한 모든 범죄 행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으로 요구하고 있어, 비동의 간음죄가 이를 확대 해석시킬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또 비동의 간음죄에서의 주요 기준인 동의 여부가 과연 수사와 재판과정에 이를 실제로 입증할 수 있냐는 문제도 있다. 

강간죄, 강제추행죄 등 현행 성범죄 관련 판결은 안 전 지사 사건의 사례처럼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에 두고 피해자 증언과 성인지 감수성에 무게를 두고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크다. 이 때문에 성범죄 누명을 쓰는 성폭력 무고죄가 동의 여부라는 기준에 의해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사진 / 에브리타임

◇ 오세라비 “여성을 수동적·굴욕적 위치로 놓는 법...여성우월주의 악용 커” 

이와 관련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등 현 극단적 페미니즘의 폐해를 지적하는 오세라비 작가는 비동의 간음죄 추진 움직임에 대해 “오는 12월 25일부터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시행되고 내년 총선이 다가오기에 해당 문제도 현재 부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여야, 남녀 의원을 가리지 않고 여폭법에 앞장섰기에 비동의 간음죄 관련법도 통과될 것”이라 예상했다. 

작가는 “기존의 엄격한 성폭력 처벌법으로 충분함에도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된다면, 국가가 남녀의 사적인 섹슈얼리티 영역까지 완전히 개입하는 상태로 들어간다”면서 “성관계나 관련 행위에 대한 동의를 어떻게 확인할지, 얼마마다 확인할지, 무엇이 확인방법인지 기준이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성인 여성이 주체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도 왜 ‘노 민스 노(No Means No) 룰에 적용받는, 수동적이고 굴욕적인 위치로 놓아야하는가”라며 “이는 남녀 모두를 위한 법이 아닌, 여성우월주의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모순된 법”이라 비판했다. 

◇ 오명근 “동의라는 ‘내심’에 객관적 기준 제시할 수 있나” 

반면 현행 법리가 사실상 비동의 간음죄로 처벌을 내리는 상황이니, 차라리 명확한 기준과 보완장치를 보장해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양예원 스튜디오 출사 논란 관련 재판을 맡은 오명근 오손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에 대해 “강제추행죄가 의사에 반한 성적 신체접촉으로 바뀌었듯 강간죄도 현행 법리는 동의 없는 성관계로 재판을 내리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 말했다. 

이어 “법원은 과거 물리적 겁박 또는 그에 준하는 사정을 요구한 반면, 지금은 폭행·협박·강압에 대한 증거 없이도 관련 효과가 있다고 광범위하게 인정한다. 사실상 폭행·협박의 법조문을 사문화 시키고 있다”며 “우리 사회 자체가 거대하고 복잡한 동의체계로 움직이기에, 비동의 간음죄로 간다 하더라도 명시적 동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문제는 남는다. 동의 여부는 절대적인 내심의 영역이기에 법에 있어 굉장히 애매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한 영국은 동의 의사 여부를 꼼꼼히 따지기 위해 피해자에게 개인 핸드폰 제출을 요구하고 모든 SNS를 먼저 조사한다”면서 “반면 국내에서는 이를 위한 절차상 수사과정을 인정하지 않고, SNS 등 증거를 인멸하면서 피해자 진술만으로 처벌하려한다”고 비판했다. 

오 변호사는 “그렇다면 여성가족부는 동의라는 내심의 영역을 객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한다. 노골적으로 입법화를 할 것이라면 정부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하기 때문”이라며 “비동의 간음죄가 만들어지면 이를 기준으로 법리 발전 및 절차 보완을 요구할 수 있는 공식이 마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5년 일본에서 발생한 성범죄 무고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포스터. 사진 / 후지 TV 네트워크

◇ 보완책 없이 도입하려는 비동의 간음죄 

영미법계인 미국은 일부 주에만 한정해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했다. 그러나 미국은 비동의 간음죄에 대해 세분화된 처벌 정도 및 SNS 증거 등 수사방침, 배심원제를 두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곰탕집 성추행 논란처럼 수사과정에서의 증거 불인정 및 권고에 그치는 한정된 국민참여재판을 보완장치로 두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5년여 간 여성계의 권력이 커지면서 성범죄 관련 재판 시, 무죄추정의 원칙이 훼손돼 이를 비판하는 시민단체까지 나온 상태다. 더불어 현 정부와 입법부에서 추진한다는 성범죄 관련 법안은 극단적 여성주의의 입김이 강한 상태에서, 추진법안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여성만을 위한 성차별적 법안이라는 인식 또한 뿌리 깊은 상태다. 

이미 관련법이기도 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반대 여론에도 강행 통과됐다는 전적이 있다. 더욱이 입법부와 사법부의 성범죄 관련 법리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신이 큰 상황에서, 다시금 고개를 드려는 관련법 추진은 여론의 반발을 누적시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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