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욕망과잉이 가져오는 참담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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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욕망과잉이 가져오는 참담한 삶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11.1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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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pixabay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잘 알려져 진부하기까지 한 이야기지만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의 주인공 바흠은 욕망으로 인해 죽는다. 가난한 소작농인 그의 소원은 자신의 땅을 가지는 것이다. 어느 날 1,000루블만 내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걸어서 돌아온 땅을 모두 가질 수 있다는 제안에 솔깃해 동이 트자마자 길을 떠났다. 그런데 바흠은 정오가 지났는데도 반환점을 돌지 않고 계속 나아가 해가 질때야 정신차려 돌아온다. 그러나 시간에 촉박한 그는 너무 달린 나머지 피를 토하며 죽는다.

사람들은 욕망을 가지지 않으려 애쓰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욕망은 어느새 살금살금 고개를 든다. 사실 토지를 가지겠다는 욕망이나 절에 가서 마음을 닦거나 교회에 가서 천국 가기를 기도하든 욕망은 다 같은 욕망이다. 욕망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상관없이 욕망은 그저 욕망일 뿐이다. 누군가는 명성과 돈과 부유함과 평판을 바란다. 또 누군가는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기를 바란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유일한 차이는 전자가 후자보다 덜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후자의 사람들은 영원한 보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세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구장천 행복하고 기쁘고 아름답고 죽지 않는 내세를 내놓으라고 탐욕을 부린다.

욕망은 등불의 기름과 같아서 기름이 떨어지면 불꽃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고 갈파한 석가모니 말처럼 욕망은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죽을 때나 되어야 때 가능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욕망과잉의 사회다. 자기 진영만이 최고라는 욕망,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인정하지 않는 욕망, 배가 불러도 저 혼자 먹겠다는 욕망, 그리고 가장 웃기고 슬픈 욕망은 바흠처럼 무조건 달리고 보는 이 나라 정치인들의 욕망이다. 욕망은 마음을 태우는 연료다. 욕망을 버리려면 그 욕망에 대한 생각을 멈추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에게 어디 그리 쉽게 멈춰지겠는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두 아들에게 쓴 편지는 정신적 향락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면서도 재물에 대한 욕망을 태우고 멈추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물질로서 물질적 향락을 누리면 해지고 파괴되는 수밖에 없지만 형체 없는 정신적 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지는 낭패를 당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으로는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도둑에게 빼앗길 염려도 없다. 불에 타버릴 걱정도 없고, 소나 말이 운반해야 할 수고로움도 없이 자기가 죽은 뒤까지 지니고 가서 천년토록 꽃다운 이름을 전할 수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있겠는가?”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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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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