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홍콩 대자보 금지, 차이나머니 위에 유신시대 ‘학칙’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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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홍콩 대자보 금지, 차이나머니 위에 유신시대 ‘학칙’있었다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11.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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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서울·한국외대 이어 홍콩 지지 대자보 금지
대학에 흘러든 ‘차이나머니’..,中 유학생만 3199명
유신정권 시절 만들어진 ‘게시물 검인’ 학칙 여전
홍콩 시위지지, 차이나머니·유신학칙에 속수무책
27일 본지가 취재한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발견된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 대자보는 학교의 게시물 검인(檢印) 학칙에 의해 언제든지 철거될 수 있는 처지에 놓여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27일 본지가 취재한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발견된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 대자보는 학교의 게시물 검인(檢印) 학칙에 의해 언제든지 철거될 수 있는 처지에 놓여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최근 대학가에서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 대자보를 훼손하는 반달리즘(Vandalism)으로 중국 유학생과 한국인 재학생간 갈등을 빚는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 27일 찾은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는 이처럼 긴장 섞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각 강의동마다 새 학생회 임원을 뽑는 투표소가 설치돼 학생들의 투표를 독려하고 있었다.

반면 표면상 이러할 뿐, 학생들이 많이 찾는 주요 강의동에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대자보들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도 캠퍼스 내 여러 강의동 건물들 속에서 손에 꼽을 만큼 소수 대자보만이 강의동 내 주요 길목 게시판에 게재돼 있었다. 일부는 아예 쉽게 떼지 못하도록 대자보 테두리에 테이프를 붙여 놓기도 했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훼손해 학생 간 갈등이 커지자, 서울대·한국외대에 이어 중앙대도 관련 대자보 부착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홍콩 정부·경찰의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이 유혈사태까지 번졌음에도 학생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막는다는 발상은 시대의 흐름과 여론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중앙대학교 내 중국인 유학생은 3199명으로 이들의 등록금이 학교 재정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이 불쾌하게 느낄 수 있는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 게시물은 학교의 ‘차이나머니(China Money)’ 감싸기로 쉽게 철거된다는 것이 대학가에 퍼져있는 상황이다. 재학생 A씨도 이에 대해 “의혈중앙이란 이념을 학교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중앙대학교 내 중국인 유학생은 3199명으로 이들의 등록금이 학교 재정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이 불쾌하게 느낄 수 있는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 게시물은 학교의 ‘차이나머니(China Money)’ 감싸기로 쉽게 철거된다는 것이 대학가에 퍼져있는 상황이다. 재학생 A씨도 이에 대해 “의혈중앙이란 이념을 학교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학교 측이 주장하는 ‘면학 분위기 조성’이라는 명분은 내국인 학생들과 대학가에서 느끼는 ‘차이나머니(China Money)에의 굴복’을 변명하는 것으로 보이기 쉬웠다. 차이나머니는 중국 자본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의 막강한 금권력이 문화 검열 등 영향력으로 미치는 현상을 일컫기도 한다. 블리자드 하스스톤 게임대회 사건 및 미국 프로농구 NBA에서 일어난 중국과의 갈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국내 대학가까지 미쳐 중국인 유학생이 대학 재정의 ‘돈 줄’이 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국내 전문대 및 4년제 대학 등 외국인 유학생 수는 16만명 이상인 반면, 중국인 유학생 수는 7만1067명(44.4%)를 차지한다.

국내 주요 대학 중 중앙대 서울캠퍼스의 중국인 유학생 수도 3199명으로 매우 큰 규모다. 이 때문에 대학가 여론은 홍콩 민주화 운동 같은 정치적 이슈는 중국 유학생이 불쾌해 할 것이고, 이는 곧 학교의 중국인 유학생 유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에 한국인 학생들의 표현을 억압한다는 것으로 입이 모아지고 있다.

재학생 A씨(21)의 의견도 이와 같았다. A씨는 “다른 대학교들(서울대, 한국외대)처럼 저희 학교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막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의혈탑이 부끄럽다”며 “아무리 요즘 살기 바빠도 중앙대가 과거 4.19 혁명에 앞장서는 등 ‘의혈중앙(의에 죽고 참에 산다)’이라는 학교 이념을 세운 것도 안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가 보이는 태도는 이를 스스로 부정한다”고 비판했다.

중앙대학교는 학칙 중 ‘교내 홍보물 게시에 관한 시행세칙’을 두고 있다. 학교 측은 미관과 무분별한 홍보 남용을 막기 위함이라는 취지이나, 실제로는 게시하려는 홍보물이 학교의 입맛에 따라 검인을 받지 못할시 언제든지 철거할 수 있는 위헌적인 학칙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중앙대학교는 학칙 중 ‘교내 홍보물 게시에 관한 시행세칙’을 두고 있다. 학교 측은 미관과 무분별한 홍보 남용을 막기 위함이라는 취지이나, 실제로는 게시하려는 홍보물이 학교의 입맛에 따라 검인을 받지 못할시 언제든지 철거할 수 있는 위헌적인 학칙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진 / 현지용 기자

이 같은 학생들의 강한 반발과 해석에도 학교 측은 아랑곳하지 않는 자세다. 특히 게시판마다 눈에 띈 것은 학교 측이 학칙이라 내세우며 붙인 경고문과, 일부 대자보의 구석에 붙은 검인(檢印) 표시였다. 학생의 ‘표현의 자유’ 권리에 ‘학교의 검인이 필요하다’는 검열적인 학칙은 그 자체로도 위헌적으로 보임이 자명하다.

중앙대의 경우 학칙 중 ‘교내 홍보물 게시에 관한 시행세칙’은 홍보물을 게시할 경우 교학지원팀 또는 학생지원팀 등 학교 측의 검인을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학교는 이에 대해 무분별한 홍보를 막고 미관을 위함이란 취지이나, 그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로 악용되는 실상이다.

이에 대한 불만은 이미 오래 전부터 누적된 것으로 보인다. 전국 4년제 198개 국·공·사립대학 학칙의 경우 159개(80.3%) 대학이 게시물 게재 시 사전 승인 조항을 두고 있다. 이 같은 게시물 사전 승인 학칙은 1975년 박정희 유신정권 당시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칙이다. 하지만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친 후 해당 학칙은 대학가에서 사문화됐다.

그런데 이 같은 사문화된 학칙이 차이나머니와 만나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위헌적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고, 설사 사문화됐을지라도 학칙이 존재하는 한 언제라도 학교의 입맛에 따라 검열·규제 및 게재 금지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이번 대학가의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로 현실이 됐다. 중앙대 내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도 검인 표시 없이 소수만이 위태롭게 게시판 자리를 지키는 상황이다.

한 단과대 학생회원인 B씨는 27일 본지와의 현장 인터뷰에서 “학교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대자보는 정치적이란 이유로 검인을 받지 못했다”고 중앙대의 게시물 검인 학칙을 비판했다. 사진은 중앙대 법학관에 위치한 정의의 여신상. 사진 / 현지용 기자
한 단과대 학생회원인 B씨는 27일 본지와의 현장 인터뷰에서 “학교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대자보는 정치적이란 이유로 검인을 받지 못했다”고 중앙대의 게시물 검인 학칙을 비판했다. 사진은 중앙대 법학관에 위치한 정의의 여신상. 사진 / 현지용 기자

중앙대 모 단과대 학생회원인 B씨도 이를 지적했다. B씨는 “이미 수년 전부터 학과제 폐지 반대 대자보처럼 학교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대자보는 정치적·선동적이란 이유로 대자보 검인을 받지 못했다”며 “학내 언론과 관련 보도에도 대자보 게재에 대한 학교의 논의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취재과정에서 본지는 중국인 유학생에게 홍콩 민주화 운동 대자보 훼손 및 학교의 게재 금지 조치를 물었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모든 중국인 유학생은 한사코 대답을 꺼리며 자리를 피했다.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차이나머니의 ‘학교 흔들기’ 때문이라는 비판으로 입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유신정권 시절부터 사라지지 않고 남아온 독재의 잔재가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막는 주 기능으로 또 다시 악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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