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노예해방론자 존 브라운과 ‘의로운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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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노예해방론자 존 브라운과 ‘의로운 분노’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11.3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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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나 존 브라운은 이 땅에서 범죄를 몰아낼 수 있는 방법은 피 뿐이라고 이제 확신한다.”

미국의 노예해방론자. ABC미니시리즈 6부작 ‘남과 북’에도 나오는 인물, 존 브라운이 처형장으로 떠나가는 길에 교도관에게 건네준 쪽지 글이다. 이게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존 브라운은 우리가 익히 들은 찬송가의 한 부분을 기억하게도 만든다. “묘지에 존 브라운의 시체가 썩고 있네. 하지만 그의 영혼은 행진하지~”라는 ‘존 브라운의 시체(John Brown’s Body)’라는 노래는 “영광 영광 할렐루야”라는 후렴구가 붙은 찬송가에 곡을 붙여 만들었다. 남북 전쟁이 한창이던 때 이 노래는 군가 곡조로 활용돼 광기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ABC미니시리즈 6부작 ‘남과 북’. 노예해방론자 존 브라운의 분노가 전편에 흐른다.
ABC미니시리즈 6부작 ‘남과 북’. 노예해방론자 존 브라운의 분노가 전편에 흐른다.

존 브라운은 노예해방주의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노예해방 운동에 앞장선다. 그는 ‘피흘리는 캔자스’라는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찬성론자들이 조직한 민병대와의 충돌하면서 과격한 근육질을 만들어 나갔다.

1851년 ‘미국 길리애드 동맹(American Gilead League)’이라는 탈주노예들이 주축인 비밀결사를 만들었으며 1856년 5명의 백인을 살해한 ‘포토와토미 학살사건(Pottawatomie Massacre)’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링컨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존 브라운과의 관계를 외면하는 등 부정적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도 민병대들을 상대로 선전(善戰)하는 등 명성을 높여갔다. 노예제 반대론자들에게서 영웅이 되었으나 찬성론자들로부터는 ‘악마의 화신’이라 불리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의 정의가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인 이상 운이 다할 때가 있다. 그는 1859년 남부 계곡에 해방노예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심으로 무기조달을 위해 정부군의 병기고를 습격했다. 그러나 바로 출동한 연방군과 교전 끝에 패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노예제 폐지를 위한 순교자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존 브라운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다. 노예 해방의 목적은 숭고하다 할 것이나 가족이 보는 앞에서 죄 없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식의 과격성은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한다. 물론 ‘의로운 분노(righteous wrath)’를 목숨으로 보여 준 인물이라며 정당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과 북’에 나오는 버질리아 하자드같은 여자가 대표적 예다. 하지만 그것은 외눈박이 견해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극단적 말과 행동은 이제 도를 넘어섰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폐로 몰고 처단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한 나라 야당 대표의 단식을 조롱하며 희화화하는 놀라운 일까지 벌어지고 이를 비아냥 거리는 정치가도 등장했다. 과거에는 그래도 이렇게 까지 비신사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 국회 안에서는 싸우다가도 국회 밖에서는 술 한 잔 나누며 나라를 걱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신사답게(존경받는 정치가 답게) 나라를 이끌어 나갔다. 또 안보며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여야가 없었다. 이제 그런 전통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왜 이렇게 피폐해졌는가. 우리 사회가 몇몇 정치인과 궤변론자들에 의해 분리되고 적이 되어가고 있다. 누가 그르고 누가 옳은 지를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그 판단을 누가 하겠는가? 제발 자제하자. ‘의로운 분노’는 외눈박이 견해를 가지고 행사할 때 더 치명적인 법을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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