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두환씨의 '마지막 양심'을 기대하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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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두환씨의 '마지막 양심'을 기대하려 해도...
  • 황채원 기자
  • 승인 2019.12.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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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음식점에서 오찬을 즐긴 전두환씨. 사진 / 정의당 제공 영상 캡처
지난 12일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음식점에서 오찬을 즐긴 전두환씨. 사진 / 정의당 제공 영상 캡처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전두환씨가 이 지난 12일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음식점에서 오찬을 즐기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국민의 분노를 샀다. 12일은 바로 전씨가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지 40년이 되는 날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을 낳게 한 바로 그날에 전씨는 고급 음식점에서 와인을 곁들이며 그날을 축하하고 있었다. 

'전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고 하고 '알츠하이머로 재판에 출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최근 모습은 이 주장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골프를 치고 이를 추궁하는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에게 막말을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전직 대통령의 건강한 모습, 아니 여전히 권력의 한 축을 쥐고 있는 인물 바로 그 자체였다. 전씨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저 사람을 사면하고 용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용서는 일곱번을 일흔 번 하라'는 말도 있고 '용서야말로 거룩한 형벌'이라는 말도 있지만 지금 전씨의 모습을 보면 이 말이 과연 옳은 말인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 비난 속에 사형 선고를 받은 그였지만 국가는 사면으로 그에게 면죄부를 줬다. 면죄부를 준 것 자체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죄를 사함 받은 이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법이 부과한 추징금을 납부하고 남은 여생 동안 국민에게 참회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거룩한 용서'가 성립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씨는 이 용서를 무시했고 도리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헬기 사격을 처음으로 증언한 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광주의 법원에 출석해서는 쏟아지는 질문에 "왜 이래?"라며 오히려 맞섰다. 그에게 용서는 참회의 기회가 아니라 '무죄'를 입증받았다는 의미로 밖에 보이지 않은 것이다. 

때마침 역시 12.12와 5.18의 주역이자 전씨 이후 대권을 차지했던 노태우씨는 병상에 누운 상황에서 광주 시민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가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아들 노재헌씨가 두 차례 광주를 찾아 사죄의 뜻을 표한 것이었고 5.18 유가족들은 "노태우씨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정확히 고백해야한다. 노씨가 진상규명 활동에 적극 협력해야 사죄의 뜻이 진정성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적어도 가해자가 뒤늦게나마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인간에게 그래도 마지막 남은 양심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아직 실효성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역사는 이미 전씨를 '반란군의 수괴'로 규정했고 그에 대한 징벌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조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는 엄밀히 말하면 이미 사면을 받은 죄와 다른, 또 하나의 가해이기 때문이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용서는 결코 무죄가 아니며 전씨는 지금 전직 대통령도, 권력자도 아니다. 그에게 마지막 '인간의 모습'을 기대하고 싶지만, 현 시점에서는 그것은 '헛된 기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참 암담하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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