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불합치’ 반영 안 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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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불합치’ 반영 안 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9.12.1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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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실확인자료 통제 강화' 헌재 결정 미반영
시민사회단체 “헌재 판결, 인권위 권고 무시하고 정부안 그대로 부의”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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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달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두고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선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의견과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취지를 왜곡하고 '정보기관과 수사기관 봐주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위치추적을 비롯해 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한 통제 전반을 강화해야한다는 헌재의 결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고 정보기관의 패킷감청을 적법 절차에 따라 통제하는 제도를 만들어야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아예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그동안 정보기관, 수사기관의 통신감시와 인권침해로 국민적인 지탄을 받아왔고 결국 다수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2010년 '통신제한조치 무제한 연장'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실시간 위치추적 ▲기지국 수사 ▲국가정보원 패킷감청이 모두 헌법불합치로 결정됐다. 2018년에 결정을 받은 세 건은 내년 3월 31일까지 법 개정이 되어야한다.

올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발의안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 개선 의견을 표명했다. 하지만 지난달 법제사법위원회가 마련한 대안은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제도와 통신제한조치 관련 일부 조항만이 개정해 헌법재판소의 결정 일부를 누락시킨 것은 물론 인권위 권고 사항도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이다.

본회의 부의안 제6조에는 통신제한조치 연장과 관련해 현행 2개월 단위 연장 제도를 존속하되 총 연장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고 다만 일부 범죄의 경우 3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인권위는 "통신제한조치 연장기간으로 원칙적 1년, 예외적 3년을 규정한 것은 근거가 명확하지 않으면서 과도해 헌법재판소의 '통신제한조치 무제한 연장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지만 개정안에는 이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또 '실시간 위치추적'과 관련해 부의안 제13조2항은 기존의 '수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다른 방법으로는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기 어렵거나 범인의 발견 확보 또는 증거의 수집 보전이 어려운 경우'를 추가했고, 다만 감청대상 범죄 또는 전기통신을 수단으로 하는 범죄의 경우는 예외를 두어 통신사실확인자료 일반 제공요건을 따르도록 했다.

그러나 이는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사례 대부분에 해당되는 '전기통신을 수단으로 하는 범죄'를 보충적 요건에서 모두 예외로 둠으로써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를 무색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권위는 위치추적의 경우 통신사실확인자료 일반 제공보다 요건을 더욱 강화해 대상범죄를 통신제한조치 대상범죄 수준으로 제한하고, 필요성에 더해 관련성을 소명하도록 하는 한편, 보충성 요건을 더 강화할 것을 제안한 바 있어 '일반 위치추적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요건보다 강화되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 부의안 13조3항은 통신사실확인자료 통지와 관련해 기소중지결정 등 처분을 한 날부터 1년이 경과한 때부터 30일 이내, 장기간 수사의 경우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을 받은 날부터 1년이 경과한 때부터 30일 이내에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을 받은 사실 등을 당사자들에게 통지하도록 하되, 통신제한조치 연장 대상범죄인 경우에는 3년 30일 이내까지 예외를 두었고 통지받은 당사자는 해당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을 요청한 사유를 알려주도록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이 조항 역시 "통지 유예 사유를 현행보다 오히려 더 확대했고 통지 유예시 사법부 등 객관적, 중립적 기관의 허가를 얻도록 하고 통지의무를 위반할 경우 이를 제재해야한다는 헌법재판소 제안을 누락시켰다"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통화내역, IP주소 등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요건에 관한 개선 사항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동전화를 이용한 통신과 관련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통신사실확인자료는 비내용적 정보이기는 하나 여러 정보의 결합과 분석을 통해 정부 주체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유추해내는 것이 가능하므로 통신내용과 거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지만 이와 관련된 부분은 현행법 그대로를 유지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20대 국회에만 통신비밀보호법 개정법률안이 무려 31건이 발의됐지만 법사위 대안은 수많은 개정안들 중 정부안을 중심으로 아주 일부의 개정법률안만을 취사선택해 마련된 것이며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제도와 통신제한조치 관련 일부 조항만을 개정했다는 점에서 법안 취사선택에 어떠한 타당성이나 일관성도 없다"고 밝혔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최근 선진국들의 법 개정 내용이나 판결을 보면 내용뿐 아니라 위치, 통화내역 등 통신사실확인자료도 보호수준을 높여야한다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고 통신사실확인자료도 민감한 정보라는 게 헌법불합치 판결의 핵심이었는데 그 내용을 반영하지 않고 '수사할 때 어떤 것을 어느 정도 허가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내용만 개정이 됐다. 정보기관의 감청을 통제할 수 있는 부분도 개정안에 없다“며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여경 상임이사는 “국회의원들 중에서는 '법원이 다 통제하고 법원이 허가를 해야만 가능하지 않느냐?'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헌재 결정문에 '법원은 통제를 못한다. 수사기관이 해달라고 하면 기각된다'는 말이 엄연히 있다. 허가서 한 장만 나오면 아무도 감독을 못한다. 선진국처럼 '감청 데이터'를 법원에 맡기고 통신사실 확인자료도 통신 내용만큼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이 개정안에 포함되어야한다"고 밝혔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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