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프로파간다와 역사 교과서, 천안함 피격사건
상태바
[기자수첩] 프로파간다와 역사 교과서, 천안함 피격사건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12.23 11:33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 유튜브
사진 / 유튜브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프로파간다(Propaganda)란 어떠한 이념 또는 사고방식 등을 홍보·설득하거나 이런 것들을 주입식 교육을 통한 철칙을 의미한다. 우리말로 선전 또는 선동이라 번역된다.

교황청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1599년 설립한 포교성(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은 신앙의 확장에서 이념·사고방식의 확장으로 의미가 변질됐다. 이에 따라 국가에 의한 자국 체제 찬양 및 거짓 정보 전파, 자국의 대척점에 대한 대상 폄하 및 이에 대한 대중의 증오 고양 등이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프로파간다화(化)됐다.

프로파간다는 2차대전기에 이르러 예술적인 경지에 이르렀다. 독일 나치 제3제국 당시 레니 리펜슈탈 감독이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의지의 승리’는 1930년대라 믿기 힘들 정도로 혁신적인 영상 예술을 보여줬다. 영상미와 기술이 집약된 고차원적인 프로파간다라 말할 수 있다.

반면 가장 일반적이자 대중과 가까운 프로파간다화 수단은 교과서다. 교과서는 배움의 근본이자 시발점이기에 그 사실과 정확성과 완벽성, 무오류성은 최고점에 이르러야 한다. 이를 침범할 때 시민사회의 반발을 사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교과서는 현실에서 국가의 프로파간다 방향에 의해 가장 많은 수정과 삭제, 왜곡을 당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특히 역사 교과서가 그러한 주요 대상이다. 역사는 후자의 기록에 따라 그 판단과 가치 및 기준이 크게 갈린다. 때문에 많은 독재적 국가는 역사 교과서를 통해 프로파간다 효과를 높이고자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일으킨 반란에 대한 명칭 부여가 대표적인 사례라 들 수 있다. 반란 이후 교과서는 이를 ‘5.16 군사혁명’으로 기록했다. 이후 ‘5.16 군사정변’으로 순화되던 반란은 오늘날 ‘5.16 쿠데타’로 원색적이게 기록되고 있다.

그 ‘혁명’은 1995년 문민정부에 들어서고 나서야 ‘정변’으로 기록됐다. 그 34년의 세월 동안 한국 시민사회는 80년대 격동의 민주화 운동기를 거쳤다. 역사 교과서 속 표기 하나의 가치는 이러한 시간과 피의 대가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여기에 정확하지 않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수정을 가하는 것은 시민사회가 가진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자 이에 대한 도전 행위다. 박근혜 정부 시절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가 한국 사학계와 한국 시민사회의 맹렬한 비판을 받은 것이 그러한 예다.

그런데 이 같은 행위가 오늘날에도 일어나는 모양새다. 정부 검정(檢定)을 통과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들에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대목이 누락된 것이다. 일부는 심지어 ‘침몰’이라 왜곡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일부 보수야당은 최근 정책간담회를 열며 이를 편향적·선동적이라 비판하고 나섰다.

46명의 승조원들이 북한 해군의 어뢰 피격에 의해 숨진 사건은 정치적 좌우 편향을 떠나 잊어서는 안되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렇기에 역사교과서는 프로파간다에 의해 좌우되기 쉬울지라도 이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의무를 갖고 있다. 일제 징용·위안부 역사 또한 ‘아픔도 우리 역사’라는 슬로건에 따라 기록되고 강조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국가의 프로파간다 행보에 따른 교과서 왜곡은 오늘날에도 일어나는 모양새다. 마찬가지로 천안함 피격사건 왜곡에 대해 반발하는 시민사회 여론은, 80년대 민주화 운동기와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에 대해 반발하는 여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번 정부가 과연 ‘역사는 반복된다’는 진리를 알고 있는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겠다. SW

hjy@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