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허수아비는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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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허수아비는 서럽다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9.12.2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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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에 넘치는 자리에 앉으면 허수아비 돼
아랫사람이 흔들지 못하게 하려면 역량과 실력 갖춰야
사진 / ShutrerStock
사진 / ShutrerStock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허수아비는 서럽다. 사람들이 새를 쫓아내라고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들판에 세워 주었지만, 북풍한설 몰아치고 땡빛이 내리쬐며 ‘겁나 눈치빠른’ 새들이 쪼아대며 희롱할 때면 만사작파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나는 외로운 지푸라기 허수아비’ 일 뿐인걸,

82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조정희의 명곡 ‘참새와 허수아비’는 ‘들판에 곡식이 익을 때면 찾아온 노란참새를 쫓아 보내야만 하는 슬픈 운명을 가진 허수아비’를 노래하고 있다. 임지훈이 시를 쓰고 박철이 곡을 만든 이 노래의 처연성은 “날 찾아 날아온 널 보내야만 해야 할 슬픈 나의 운명”에서 그 절감(切感)을 더한다.

허수아비의 슬픔은 “훠이 훠이 산 너머 멀리멀리 가거라”하면서 님을 떠나보내는데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슬픔은 참새가 자신의 실재를 파악하고 희롱하는데 있다. 그건 슬픔이라기 보다 절망일 터이다. 그래도 어쩌면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타고난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자신에게 새들을 내쫒으라는 막강한(?) 의무를 부여하고 논밭을 호령하는 지위를 내려 주고도 누더기 옷 조차 제대로 갈아 입히지 않고 온갖 풍파에 꾀죄죄해진 얼굴 한 번 씻기지 않다가 가을걷이가 끝나면 폐기해버리는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이 더 클 것이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앞이 조금씩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도 두려움을 이기려’ 참새가 다시 오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정치계에도 허수아비가 많다. 전문성과 경험, 그에 맞는 역량 등이 겸비되지 않는 사람이 분수에 넘치는 자리에 앉게 되면 그날로 허수아비가 된다. 역사에도 그런 인물이 많다. 견훤에 휘둘린 경순왕, 반정으로 추대된 중종 등 수도 없다. 이런 사람들은 아랫사람들에게 휘둘린다. 진나라 간신 조고의 등살에 못배겨난 호혜 황제도 그런 인물이다.

이 정부 들어 단행한 인사들은 말썽없이 지나간 경우가 거의 없다. 장관직을 수행하면서도 그저 얼굴만 비치고 지나간 사람도 숱하다. 지난 주 단행된 인사도 말이 많다. 만취 운전으로 장관직에서 낙마한 사람에게 결국은 자리를 만들어 줬다. 또 어떤 사람은 정말 그 자리가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만든다. 허수아비가 서럽지 않으려면 그 사람이 차고 앉은 자리에 대해 모두가 납득할 만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아랫사람이 흔들지 못한다. 허수아비 노릇하다 폐기 당하는 것 만큼 서러운 일도 없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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