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좁아도 내 몸 누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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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좁아도 내 몸 누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데..."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9.12.2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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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예정' 양동 쪽방촌의 크리스마스 이브
개발 이후 쪽방 주민들 재정착 구상 없다는 비판 제기
주민들 "원주민 쫓겨나는 구도, 돈 없고 살 길 없는데 나가야해"
재개발 계획이 알려진 서울역 '양동 쪽방촌'. 사진 / 임동현 기자
재개발 계획이 알려진 서울역 '양동 쪽방촌'. 사진 / 임동현 기자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서울역 맞은편 서울 남대문경찰서 뒤. 경찰서를 끼고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가면 일명 '양동 쪽방촌'으로 불리는 곳이 나온다.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 일찍부터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익히 아는 이웃 사람을 만나자 '잘 있었냐?'라는 인사를 하지만 반가움을 담은 말투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뒀다고는 하지만 이 곳은 아직 성탄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벌써 비어있고 철거 표시가 되어 있는 건물, 그 우편함에 놓여진 신용정보회사의 등기우편이 을씨년함을 더하고 있었다.

양동 쪽방촌. 지난 10월, 서울시는 도시계획위원회를 통해 6개동 250여개실의 쪽방이 포함된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을 수정 가결했고 11월 서울 중구는 정비계획 변경결정(안)에 대한 재공람 공고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 변경안은 쪽방이 있던 곳을 1종 및 2종 근린생활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 노유자시설, 게스트하우스 등 숙박시설 등을 지정 및 권장용도로 정하고 있어 쪽방 주민들이 개발 이후 해당 지역에 재정착할 수 있는 구상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곳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노인들이며 기초생활수급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정보접근성이 떨어지다보니 공고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주민들이 많았고 공고에 대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평균 연령이 61세, 평균 거주 기간이 6~10년이며 연세가 있으시고 질병이 있어 방에 누워계시는 시간이 많다. 중졸 이하 학력자가 70%가 넘는다. 이번에 의견서를 적었을 때도 직접 쓰신 분이 10명 중 2명 정도밖에 안된다. 나머지는 모두 말씀하신 것을 저희가 대필한 것"이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재개발이란 곧 '쫓겨나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가려해도 살 돈이 없고,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나가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재개발이 된다고 해도 내 몸 누일 곳만 마련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목소리였다.

철거가 예정된 쪽방 건물. 사진 / 임동현 기자
철거가 예정된 쪽방 건물. 사진 / 임동현 기자

"재개발 계획만 나왔지, 이곳을 어떻게 재개발하겠다는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여기 주민들도 이제 여기 재개발될 것이라는 거 다 아세요.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이주대책이라든가 여러가지 대책이 나오겠지요. "맨 처음 찾은 '남대문쪽방상담소'의 관계자는 이런 말을 전했다. 

"상담소 사람들은 지금 상황 잘 모를거야. 그렇게만 아니까 그리 말한 거지. 재개발? 집을 짓건 아파트를 짓건 원주민은 다 쫓겨나. 그 전에는 집을 준다고 하는데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니까 집을 사라고 하는 거야. 근데 집 살 돈 있는 사람들이 어디있어? 그러니 쫓겨나는 거지. 나부터 그래서 반대야" 40년간 양동 쪽방촌에 살며 조그만 가게를 운영해온 박규언(77)씨의 말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노숙자, 수급자들이야. 갈 데가 없어. 나도 여기서 나가면 갈 데가 없어. 여기(가게)도 이미 팔렸는데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으니까 버티는 거야. 다른 곳으로 가려해도 다 반대하잖아. 우리가 다 옮기려면 수급비가 3억이 넘는데 다들 예산이 없데. 돈은 많은데 예산은 없다네(웃음). 결국 돈 없으니까 오지마라. 귀찮다. 죽으려면 여기서 죽어라 이거지. 쥐어주는 것도 없이 말이야".

남동우씨가 살고 있는 쪽방. 누울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것만으로 참 좋다는 것이 남씨의 말이었다. 사진 / 임동현 기자
남동우씨가 살고 있는 쪽방. 누울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것만으로 참 좋다는 것이 남씨의 말이었다. 사진 / 임동현 기자

마침 가게 앞을 지나던 남동우(63)씨를 만났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자 "좁지만 그래도 내 몸 누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라고 말했다. 조심스레 '사시는 곳을 보여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보여주겠다고 하신다. "내 방은 그래도 큰 편"이라는 말과 함께.

남씨의 방은 정말로 사람이 몸을 겨우 누일 수 있는 크기였다. 그곳에 없는 것이 있었다. 취사 도구였다.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하니 근처에서 식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식사를 한다고 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밥 먹고 이것저것하다가 오후에 밥 먹고... 그래도 방이 따뜻하니까 살만해"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는 그다.  "방도 보여줄 수 있고 내 사는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그런거지. 누울 곳이 있다는 것이 어딘데. 여기를 떠날 이유가 없지. 내가 무슨 죄를 지은 사람도 아니고..." 

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두 어르신을 만났다. 이분들도 30년을 넘게 이 곳에 생활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70만원을 받지만 방세를 내고 남은 40여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한다. 지출의 대부분은 부식값, 그리고 술과 담뱃값이다. 이들이 외로움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술과 담배이기 때문이다.

이 중 한 어르신은 가족이 각각 따로 살고 있었다. 아내는 정신과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언어장애를 겪고 있는 딸은 용인의 한 시설에 살고 있다. 그는 종종 용인에서 딸을 만난다고 한다.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그의 핸드폰 바탕화면에 깔려 있었다.  "아내가 딸을 가진 상태에서 정신과 약을 먹었어. 그래서 우리 딸이... 안타까워. 같이 살면 좋겠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장갑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기자의 손으로 향해 있었다. "장갑도 없이 거 추울텐데, 고생이 많네..."

철거가 예정된 건물. '게스트하우스 리모델링'이 쓰여진 현수막이 재개발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 / 임동현 기자
철거가 예정된 건물. '게스트하우스 리모델링'이 쓰여진 현수막이 재개발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 / 임동현 기자

이동현 활동가는 "재개발이라는 것은 외지인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게 목적인데 게스트하우스, 관광 호텔 같은, 사는 분들과 상관없는 것들이 주가 되고 있다. 그동안 쪽방 주민들이 적법한 보상을 받고 나온 사례가 없다. 쪽방상담소가 쪽방의 문제를 알고 상담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하는데 상담소 사람들도 쪽방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바로 앞에 있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최소한 관심을 가져줬으면하는 바램이 있다"고 전했다.

쪽방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각각의 집에는 한 교회가 제공한 떡국이 배달되고 있었다. 성탄의 온기가 조금이나마 전해지는 순간이지만 이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몸을 누일 수 있는 따뜻한 방 한 칸이 온전히 보전되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개발'의 미명아래 사라짐을 강요당해야하는 사람들에게도 새해는 오고 있었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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