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학생회비는 눈먼 돈이자 곶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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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학생회비는 눈먼 돈이자 곶감인가
  • 현지용 기자
  • 승인 2019.12.2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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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유튜브
사진 / 유튜브 캡쳐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언제부터 세금과 학생회비는 ‘곶감 빼먹듯’ 눈먼 돈 취급을 당하기 시작했을까.

중국 학계가 중화 문명의 위대함과 당의 프로파간다를 부르짖을 때, 기자이자 작가인 우쓰는 중국 사회의 부패를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그는 저서 『잠재규칙』을 통해 중국 부패의 역사와 숨겨진 부패의 규칙인 ‘잠재규칙’, ‘누규(陋規)’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혔다.

이 숨겨진 규칙이란 사회에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암암리에 부패의 관계자·당사자들끼리는 이해하고 당연시 하는 행위준칙이다. 여기에는 뇌물을 주고받는 자 뿐만 아니라, 뇌물로 쓰일 돈을 수탈당하는 민중도 포함된다.

누규를 통해 부패는 감춰진다. 드러날지라도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다. 부패를 고발하는 청백리는 되려 이를 감독하고 공정히 처벌해야할 중앙 관리에 의해 처벌을 받거나, 유·무형의 보복을 받는다. 오늘날 G20 국가라는 한국이 이웃 선진국과 달리,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처지와 겹쳐지는 모습이다.

국회 국정감사, 연말연시가 되면 어김없이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이 세금 빼돌리기다. 거짓출장, 사람 없는 추가수당부터 예산낭비, 돈은 나갔으나 결과물은 없는 사업 결산서까지, 국민의 혈세는 줄줄 새고 있다. 그럼에도 그 ‘구멍’을 틀어막기란 까마득히 멀어 보인다.

이를 너무나 익숙히 보고 자란 탓일까. 피땀 흘려 낸 등록금도 세금처럼 눈먼 돈 취급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 이를 곶감처럼 빼먹는 이는 학교만이 아닌, 학생이라는 미래의 꿈나무다. 그 곶감 빼먹기는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후배가 선배에게 상납하는 ‘졸업반지’, 여러 명목의 MT회비, 축제회비 등 ‘학생회비’로 거둬졌다.

이를 거부하는 학생은 학교 게시판에 ‘학회비 미납자’라며 조리돌림을 당하거나, 학교생활에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유·무형의 협박을 받는다. 부패를 비판해 받는 보복이란 수고보다, ‘상납하고 굴복함이 낫다’는 잠재규칙이 한반도에도 여전한 것이다.

지금도 대학가에서는 “학생·여학생회 회장 자리를 맡으면 졸업 때 차 한 대를 뽑는다”는 웃지못할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학생회관 앞 버려진 피자박스 수가 그 학생회의 재력 척도”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니 말이다.

학생회비도 어찌 보면 한반도 땅에서 자란 두레, 품앗이 같은 전통에 기인할 수 있겠다. 우골탑(牛骨塔) 세대의 배고픈 대학생들은 어렵사리 얻은 학생회비, 쌈짓돈으로 주린 배에 모주 한잔을 채우고 학생운동 대열에 힘썼다. 대학가의 학생문화, 운동문화도 그렇게 자랐다.

하지만 오늘날 이 따뜻한 돈은 누군가의 호주머니 속 ‘곶감’이 됐다. 학생회비 납부를 악용한 ‘학생 부패’가 학생문화의 쇠락에 기여하는 한 축이 된 것이다. 그나마 오늘날 대학생들은 불의에 맞선 선배 세대의 유산을 이어받아, 비판의 목소리를 냄에 거리낌 없는 모습이다.

반면 지금도 상당수 한국의 대학교에는 이를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실정이다. 그렇기에 지난 24일 학교로부터 그 같은 말을 듣게 된 것일까. 마치 탐관오리가 청백리의 비판을 귓등으로 흘리듯, 곳간 속 쥐 몇 마리를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다. 입시 과열의 시대 속에서 여느 대학처럼 명지대의 입결(입시결과)도 쉽게 떨어지진 않겠다. 하지만 그 명성과 자부심은 학교의 손에 의해 오래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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