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2019년②] '82년생 김지영'이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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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보는 2019년②] '82년생 김지영'이 쏘아올린 작은 공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9.12.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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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설보다 진일보된 영화 속 김지영
올해 나온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올해 나온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그는 원래 2016년에 등장했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책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렸다. 그의 이야기가 곧 이 시대 여성의 삶을 대변한 것이라는 호평과 함께 '남성을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 매도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故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5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이 책을 선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책은 다시 인기를 얻었고 어느새 그의 이름은 '페미니즘 논쟁'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심지어 '여자 이야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난하는 남성들의 무분별한 반발이 논란이 됐다. 한 걸그룹 멤버가 공식 석상에서 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일부 남성 팬들의 비난을 받고 굿즈가 훼손되는 일이 벌어지자 '걸그룹 멤버들을 단순히 눈요기, 노리개로 생각하는 남자들'에 대한 비난이 온라인을 달구기도 했다.

2019년 그는 스크린을 통해 다시 나타났다. 영화는 소설보다 진일보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선보였다. 소설이 이 시대 여성들이 왜 힘든지를 나열한 것이라면 영화는 그 여성들의 문제가 비단 한 개인, 대한민국 여성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남성도 고민해야하는, 그리고 모두가 다 함께 도와야하는 문제임을 그와 남편, 그리고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줬다. 이제 그는 허구의 인물, 단순한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줘야할 여성의 대표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를 정리하며 '82년생 김지영'을 거론하는 이유다.

지난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상반기 지역별고용조사 경력단절여성 현황'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15~54세 기혼 여성은 884만4000명,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는 비취업여성은 336만6000명이었다. 이 중 경력단절여성은 169만9000명으로 전체 기혼여성의 19.2%였다. 이들이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육아가 38.2%로 가장 많았으며 결혼(30.7%), 임신 및 출산(22.6%)이 그 뒤를 이었다.

물론 결혼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 둔 여성은 지난해보다 17.7%, 임신 및 출산 사유도 지난해보다 13.6%가 줄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을 그만 둔 여성은 지난해보다 4.8%가 늘어나 육아 부담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는 바로 '82년생 김지영'이 결코 소설, 영화 속 허구의 인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김지영이 곧 나, 내가 곧 김지영'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만 해야하는 김지영(정유미 분)이 등장한다. 그의 겉모습만 보면 '저 정도면 행복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남편은 성실하면서 자상하고 당장 생계 걱정을 할 정도로 살림이 궁핍한 것도 아니며 시부모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김지영의 삶이 결코 아니었다. 딸을 낳은 후 그는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반대에 부딪히고 결혼 전에 하던 광고기획 일을 다시 시작하려해도 반대가 나온다. 베이비시터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가 성장하면서 느낀 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남아선호' 역시 그를 답답하게 했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생각하지만 '육아휴직은 바로 퇴사'라는 인식이 있기에 결정이 쉽지가 않다. 

김지영은 종종 자신의 친정 어머니로, 남편의 전 여자친구로, 친정 어머니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빙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상태가 와야 그는 자기가 하고픈 말을 할 수가 있다. 물론 그 상황이 지나가면 지영의 기억에는 사라지지만 말이다. 지영의 식구들은 물론 착한 사람들이지만 남아선호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지영의 어머니는 교사를 꿈꿨지만 생계를 이유로 그 꿈을 포기해야하는 사람이었다. 지영의 어머니가 지영의 상태를 알고 가족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 슬픔보다는 통쾌함을 느꼈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로 하루를 보내고, 하루하루 쳇바퀴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이런 그를 어떤 이는 '맘충'이라고 비웃는다. 이 소설을 쓴 조남주 작가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사들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공원에 산책 나갔다가 점심시간 회사원들로부터 '맘충'이라는 비야냥을 들은 적이 있다. 남성에 비하면 여성 팔자가 좋다는 이야기였다"며 이 소설을 쓴 이유를 밝혔다. 

이 에피소드는 소설과 영화 모두 그대로 나온다. 다만 소설은 김지영이 아무 말도 못하고 아이가 우는 것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영화는 김지영이 비난을 한 남자들에게 항변을 하고 길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여유를 보인다. 부당함에 항변하는 보통 여성의 모습. 이것이 바로 '82년생 김지영'이 전한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문제는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9년 '82년생 김지영'이 세상에 전하는 외침이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82년생 김지영'을 위한 정책들을 통해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보이겠지만 과거처럼 미사여구 정책으로는 통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이 사회는 과연 세상에 눈을 뜬 '82년생 김지영'의 변화를 제대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김지영은 이제 새 출발을 시작한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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