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2019년⑤] 봉준호, '기생충' 그리고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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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보는 2019년⑤] 봉준호, '기생충' 그리고 화성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9.12.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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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잡히기 염원한 '화성 연쇄살인범' 밝혀져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사진 / AP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사진 / AP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혼란과 갈등이 반복됐다고는 하지만 2019년이 결코 우울하지만은 않은 것은 곳곳에서 나온 기쁨과 희망의 소식,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류현진의 승리, 손흥민의 골은 기쁨과 함께 자부심을 느끼게 했고 송가인과 유산슬로 이어진 '트로트 열풍'은 우울했던 마음을 즐거움과 희망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으며 '10살 연습생' 펭수의 등장은 어른들 앞에서도 자신만만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픈 우리에게 대리만족의 기쁨과 즐거움을 줬다. 

그리고 올해, 열두살 시절의 꿈을 이룬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열두살 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 이 트로피를 손으로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감사하다". 한국영화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되던 해,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상과 함께 국내 흥행도 잘 됐고 각종 국내외 영화제가 그를 불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 그가 영화 속에서 그렇게 잡히기를 염원했던 연쇄 살인범이 마침내 밝혀졌다. '인물로 보는 2019년'의 마지막은 가장 잊지 못할 2019년을 보냈을 인물, 봉준호 감독을 이야기하려한다.

올 4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영화인들의 호평 속에 대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설마?'하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그동안 우리 영화가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을 때마다 '수상 가능성 유력', '격찬' 등을 남발했던 언론 보도에 무감각해졌고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생긴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런데 올해 <기생충>의 호평은 설레발이 아니었다. 조금씩 대상의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지명됐다. 봉 감독은 영화감독을 꿈꿨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수상의 기쁨을 표현했다. 특히나 이 상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는 것은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BBC는 <기생충>을 '사회 계층 간의 역학 관계를 탐구하는 블랙 코미디 스릴러'라고 평가했고 가디언은 '극중 주인공이 끄는 메르세데스 벤츠만큼 부드럽게 전개되는, 아주 재밌게 볼 수 있는 풍자적인 서스펜스 드라마 장르'라고 격찬했다.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우리 모두는 이 영화가 우리를 다양한 장르로 데려가는 기대치 못한 방식, 재치있고 웃기고 부드럽게 우리에게 알려주는 방식의 신비로움을 공유했다"고 호평했다.

칸 영화제의 낭보는 우리나라 극장가에도 영향을 미쳤고 <기생충>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천만 관객 돌파는 단순히 '칸 영화제 대상', 혹은 '국뽕'의 이유가 아니었다. <기생충>은 반지하와 부유층의 공간, 그 부유층의 공간에 숨겨진 또 다른 지하 공간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관계를 그려내면서 우리의 삶이 알고 보면 사회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삶일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이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큰 공감을 샀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그리고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봉준호의 영화들은 치밀한 이야기 전개와 섬세한 연출로 관객들의 인정을 받아왔다. 세상의 보편적인 문제들을 바탕으로 때로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때로는 웃음으로 혹은 스릴러로 전했던 그의 영화들은 거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보다는 하나의 울림을 전하며 관객의 잠든 마음을 깨워왔다.

그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80년대 일어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범인을 미치도록 잡고 싶어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살인범이 잡히지 않은 것은 형사들의 무능이나 무식함이 아니라 살인사건보다 시위 진압에 더 신경을 쓴 당시 정부, 범인을 밝혀낼 수 없는 당시의 열악한 환경이 미제 사건을 만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까지 살인범이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고 영화 상영 당시 봉 감독도 이 영화를 본 뒤 범인이 잡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바로 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잡혔다. 이미 다른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이춘재가 바로 그였다. 이춘재의 등장으로 <살인의 추억>은 다시 주목받았고 봉 감독 역시 다시 주목받았다. 

봉 감독은 지난 10월 미국에서 열린 영화 축제 '비욘트 페스트'에 참석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은 한국에서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우리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살인의 추억>을 만들 때 범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했었다. 마침내 범인의 얼굴을 봤다. 내 감정을 설명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범인을 잡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 경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기생충>, 그리고 화성. 봉준호의 2019년은 이 둘로 요약이 가능하다. 

<기생충>은 내년 아카데미 수상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골든글로브에서는 감독상과 각본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있고 아카데미에서도 외국어영화상은 물론 주요 부문 수상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내년에도 영화계에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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