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 막겠다고 '산재 조사'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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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 막겠다고 '산재 조사' 못하게 한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1.0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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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시행 산업기술보호법 '대기업 보호 법률' 비판
반올림 "삼성 산재 자료 제출 막게 한 '삼성보호법'"
산자부 "기업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기관 판단으로 자료 공개 가능"
지난 7일 반올림 등 인권 시민단체들이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반올림
지난 7일 반올림 등 인권 시민단체들이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반올림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해 8월 국회의원 206명의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해 올 2월부터 시행되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산업재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 공개를 법으로 가로막아 재해 피해자가 아닌 대기업을 보호하는 법률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인 '반올림'은 "산재 노동자들에게 '삼성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받은 삼성을 이 법이 도와줬다. 산업기술보호법은 '삼성 보호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산업기술에 대한 보호조치를 강화하는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서 산업기술을 보호해야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며 찬성 206명, 반대 0명으로 무난하게 통과됐다. 하지만 개정안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술보호를 이유로 산업재해 진상 조사를 기업이 막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부분이 나온다.

개정안 9조 2항은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은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아니된다. 다만,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민경제의 발전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산업재해 진상 규명을 위해 안전진단보고서, 작업환경보고서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해도 '핵심 기술 유출 우려'를 기업이 주장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반올림 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는 지난해 '미디어오늘' 기고문에서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는 공개되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은 지난 수년간 삼성 반도체 공장에 관한 안전보건진단 보고서, 특별감독 보고서,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소송에서, 그리고 삼성 노동자들의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삼성과 고용노동부가 숱하게 했던 주장이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정한 '국가핵심기술'이 쓰이고 있으므로 그 공장에 관한 이 보고서들은 모두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이고 따라서 공개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당초 산업기술보호법이 '국가핵심기술'을 따로 지정하는 이유는 관련 기관으로 하여금 그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하라는 취지이지, 관련 정보를 모두 비공개하라는 취지가 아니었으며 정보공개법에도 사람의 생명, 건강 보호를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그 내용이 기업의 영업 비밀에 해당되더라고 공개하도록 되어있다. 법원이 우리 손을 들어주며 보고서 공개 판결을 내린 것은 삼성의 주장이 법률적으로 틀렸다는 판결을 이미 받은 것인데 그 주장이 고스란히 새로운 법률이 되어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개정안 14조 8항은 적법한 경로로 정보를 제공받아도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그 정보를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며(36조 4항) 징벌적인 손해배상도 가능하도록 했다(제22조의2). 그리고 15조는 '금지 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발생한 때에는 즉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및 정보수사기관의 장에게 그 사실을 신고하여야하고, 필요한 조사 및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노동 환경을 찍은 동영상을 공익을 위해 사용하는 행위도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산업재해의 진상을 알아보겠다'고 말해도 기업이 '금지 행위 우려'를 이유로 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해 진상조사 자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시민단체들은 개정안이 시행되는 2월 21일에 맞추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이 법이 통과될 때까지 토론이나 검토가 없었다는 점과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까지 찬성표를 던진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지난해 말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영업 비밀을 이유로 기업이 산재 입증 자료의 공개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내는 등 뒤늦게 개정 노력이 나오기도 했지만 현행 법의 시행을 막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반올림 측은 "산업기술보호법은 노동자의 알 권리와 건강권 등을 침해하는 위험한 법이며 노동자가 일하며 알게 된 산업기술을 외부에 알려서도 안 되고, 누군가가 알게 되어 이를 활용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하는 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제보한 이도, 정보를 알고 세상에 알리는 반올림도 모두 법의 저촉을 받게 된다. 반올림이 삼성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얻고 이를 소송에 쓰려는 과정에서 삼성이 정부와 국회를 활용해 아예 법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가에서 '핵심기술'로 판정을 받은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정보공개가 가능하다는 행정심판위원회의 판단이 있었다. 핵심기술 유출이 중대한 사항이기에 공개 제한의 필요성이 있지만 무조건 비공개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나 국민 경제에 악영향이 없다면 공개할 수 있다는 조항도 만들어져 있다. 기업들이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데 이 부분은 기업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공개 청구를 받은 행정기관들이 판단하는 것이다. 기관들이 국가핵심 기술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부분은 공개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 이번 법이지 개별 기업이 임의적으로 공개한다 안 한다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행정위가 공개하지 말 것을 결정한 '국가핵심기술'의 구체적 내용이 명확히 나오지 않았고 이 법안이 '기술유출 방지'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안전 을 도외시한 것이라는 비판이 존재하고 있어 산업기술보호법 시행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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