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는 멀고 인턴은 가깝나...청년 울리는 ‘인턴 재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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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는 멀고 인턴은 가깝나...청년 울리는 ‘인턴 재계약’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1.1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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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버리는 ‘티슈인턴’, ‘인턴 재계약’으로 변질
인턴 가이드라인, 청년인턴 노동착취 보호 못해
청년유니온 “청년 현실 악용, 지도·감독 보완해야”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인턴(일경험 수련생) 제도를 악용해 인턴 재계약으로 청년 노동을 착취하는 실태가 발생하고 있다. 반면 이를 방지할 가이드라인은 유명무실한데다, 관리·감독할 당국 또한 해당 문제에 크게 주목하지 않는 모습이다.

A씨는 지난해 모 대학의 상경계열 학과를 졸업한 후 한 영업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구직시장이 경력자를 선호하기에, 그는 6개월 인턴 기간 동안 성실히 일하면 이를 인정받고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꿈꿨다. 최저임금으로 3시간 왕복의 출퇴근 지옥도 버티며 지냈다.

그런데 인턴 기간이 끝나기 며칠 전 회사의 인사과는 A씨에게 정규직 채용 여부가 아닌, 인턴 재계약을 권유했다. 인사과 담당은 회사 사정, 근로 행태를 이유로 “당장의 정규직 전환은 어렵지만 한번 더 인턴 계약을 맺으면 다음 심사 때 정규직 전환에 신경 쓸 것”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였다. 실상은 ‘새 사람을 또 뽑아 가르치고 쓰느니, 원래 있는 인턴을 계속 인턴 신분으로 헐값에 일을 맡기는 것이 낫다’는 심보였다. 티슈처럼 한 번 쓰고 버리는 ‘티슈인턴’이라는 청년 구직자들의 자조적인 한탄이 왜곡된 형태인 것이다.

A씨는 “이대로 포기하느냐, 마느냐는 혼란부터 인턴으로만 채워질 이력서 경력 등 두려움과 걱정, 청년 노동 착취에 대한 절망이 컸다”고 고백했다. A씨는 결국 인턴 재계약을 거부하고 회사를 나왔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인턴 6개월이라는 이력서 경력 한 줄과 6개월 동안 지친 몸과 마음뿐이었다.

A씨와 같은 경험은 한국 구직시장에서 인턴 노동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인턴제도는 일경험 수련생이란 이름으로 의사의 인턴제를 모방해 국내 노동시장에 도입됐다. 하지만 근로자가 아니라는 법적 신분 때문에 실무를 맡고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거나, 심하면 추가근로 수당도 받지 못하는 등 노동시장에서 약자의 위치에 놓였다.

이 같은 문제가 심화되자 정부는 2016년 2월 ‘일경험 수련생에 대한 법적 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최저임금 및 근로시간 준수 등 실질적인 근로자로서 최소한의 선을 지키라는 경고인 것이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하지만 가이드라인 제정 이후 약 4년이 지난 지금도 청년 인턴에 대한 노동 착취 실태는 여전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지급, 근로계약서 작성 등 필수적인 노동법 준수는 강화된 법 덕분에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다. 반면 정규직 채용을 미끼로 인턴 재계약을 악용하는 행태는 A씨의 사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청년 노동자들로서 구인시장은 경력자를 선호하는 특성 상 ‘병(丙)’의 위치에 있다. 그렇기에 인턴 이외에는 마땅한 실무 경력 쌓기가 제한돼있다. 하지만 구직시장에서 인턴 경력은 실무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등 노동 편견도 팽배한 실정이다. 인턴 경력으로만 이력서가 점철될 수 있다는 불안에 청년 구직자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다.

그나마 관련법으로 국회에 올라와있는 법안은 정세균 현 국무총리 후보자가 의원 시절 발의한 ‘일경험수련생 보호에 관한 법률안’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고용노동부의 인턴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한 수준일 뿐, 인턴 신분을 악용해 인턴 재계약으로 청년 노동을 착취하는 문제까지 고려하진 않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인턴 재계약 문제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딱히 무엇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13일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고용노동부로서는 해당 문제에 손대기 어렵다. 일경험수련생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자이기에 법이나 근거 규정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당위성이나 실효성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청년 인턴 착취 문제에 주목해온 청년유니온는 인턴 재계약 문제에 공감했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같은 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인턴제 6개월 제한을 악용한 인턴 재계약은 기본적으로 가이드라인의 취지와 어긋나는 행태”라며 “인턴을 했는데 또 인턴을 하자는 재계약은 ‘인턴을 왜 쓰는가’라는 이유에서 벗어난 것”이라 비판했다.

그러면서 “취업 경쟁에 내몰리는 청년의 현실을 악용해 고용불안을 지속·반복시키는 것들은 대단히 나쁘다”며 “인턴은 같이 일을 하겠다는 가정의 하나로 하는 것이다. 그 본연의 의무를 잘 살리도록 (관계 당국의) 지도·감독 및 행정 보완이 잘돼야한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노동시장에는 일은 하면서 근로자는 아닌 신분으로 노동법의 보호 바깥에 소외된 계층이 팽배한 것으로 보인다. 특수고용노동자부터 청년 인턴까지, 노동시장의 최하위층에 놓이는 약자들을 위한 당국의 문제의식 각성이 필요해 보인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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