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한국인에게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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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한국인에게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01.2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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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튜브 캡쳐
지난 13일 스타강사 주예지 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강의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캡쳐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여기서 가리키는 ‘저렇게 된다’는 직업이 어떤 업종을 말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다. 학벌만능·성적지상주의·엘리트주의 사고방식이 박힌 이들이 가진 직업관이다. ‘공부를 많이 하면 돈도 따르고 성공할 수 있다’는 욕망이 너무나 깊이 자리하고 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시대는 여전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수능 수학 강의를 하는 미모의 20대 유명 스타강사 주예지 씨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주 씨는 지난 13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수학 7등급 나오면 용접 배워서 호주가야 돼, 돈 많이 줘”라고 말하며 용접하는 흉내와 소리를 내며 웃었다.

주 씨의 해당 영상이 순식간에 퍼지자 그러한 흉내는 용접 직업을 가진 엔지니어를 비하하는 모양새로 됐다. 주 씨는 다음날 사과 영상을 올렸으나, 20대 나이에도 우리 사회 내 뿌리박힌 직업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행복의 조건, 행복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좋은 성적으로 명문대 진학하고 부와 명예를 얻는다 해서 행복할까? 용접 같은 엔지니어, 환경미화원, 혹은 시간제 가사도우미, 택배 등등 궂은 일, 험한 일, 위험한 일을 하더라도 직업으로 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다. 행복은 돈이 많은 자든, 권력자의 위치에 있는 자든 쉽게 나눠주지 않는다. 정신이 천박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직업에 대한 편견이 매우 강하다. 주 씨의 경우도 이런 직업관에 세뇌돼 무심결에 뱉은 말일지도 모른다. 성적만 좋으면 명문대 진학해 인정받는 직업을 갖는 것이 곧 행복한 삶을 누리는 지름길이라는 인식 말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군을 가졌거나 부를 축적했다 해서 반드시 행복하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행복은 불안정한 동시에 영속적일 수 없다. 완전한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행복의 기준과 조건도 제시하기 어렵다. 과도한 부를 가진 이들일수록 더욱 불행과 가까워 마치 불행이 덤불 속에 숨어있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삶일 수도 있다. 과도한 부는 언제나 경계 대상이며 행복의 장애물이다. 그러니 행복의 조건을 부와 높은 지위에서 찾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행복은 자신의 심신이 안정되고 “아! 이 순간이 계속 지속됐으면!”하는 바람을 느끼는 상태일 때 찾아온다.

19세기 단편 문학작품 두 편에서 행복은 무엇인지 논해볼 수 있다. O.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가난한 젊은 부부는 1달러 80센트가 가진 돈의 전부다. 젊은 부인은 남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갈색 폭포수 같은 긴 머리카락을 판다. 남편이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간직하고 있던 금시계는 줄 대신 낡은 가죽끈을 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판 돈으로 금시계 줄을 산다.

한편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의 아름답고 긴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꽂을 값비싼 한 쌍의 머리핀을 산다. 하지만 서로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은 당장은 필요 없게 된 선물이 돼버렸다. 어리석은 행위라 할 수도 있지만 가난한 젊은 부부는 소중한 사랑을 확인하고, 그 순간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을 나누게 된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수전노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는 유명하다. 스크루지는 동네 거지, 강아지도 피해 다닐 정도로 평생 돈만 아는 소문난 구두쇠다. 크리스마스 전날에도 석탄 한 덩이로 불을 피우고 일하는 서기를 외면한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 한다.

그날 밤 스크루지에게 유령이 찾아온다. 유령은 “너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말과 함께 그의 과거, 현재, 미래로 안내한다. 불행했던 소년기와 돈을 위해 버린 옛 연인의 모습, 그리고 가난하지만 가족애 넘치는 서기의 가정을 보여준다. 그 다음으로 스크루지가 홀로 죽은 후 동네 사람들이 오히려 기뻐하는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충격을 받은 스크루지는 회심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크리스마스 날, 서기의 집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칠면조를 보내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산을 기부한다. 왕래가 끊어진 조카의 집을 방문해 함께 크리스마스를 축복한다. 스크루지 영감은 비로소 진정한 행복의 샘을 발견한다.

이렇듯 행복은 물질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 마음의 상태에서 다가온다. 행복의 깊이는 어떤 직업을 갖든, 소득수준과 상관없다. 요즘 한국인들의 얼굴에서 행복감을 찾아보기 좀체 어렵다. 필자는 대중교통 이용자로 지하철, 버스를 늘 타고 다닌다. 시민들 대다수가 다들 어딘가 화난 표정이거나, 고개 숙이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행복한 인상, 지혜로 반짝이는 표정, 긍정적인 대화와 웃음기는 사라지고 차고 무거운 공기만 짓누르고 있는 분위기가 흐른다. 모두가 어딘가 어둡고 불행해 보인다.

우리는 행복을 너무 높고 먼 곳에서 찾는다. 공부를 많이 해서 명성과 부를 쌓는다고 행복이 원 플러스 원 행사처럼 딸려 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매 순간 순간마다 존재한다. 누군가 나에게 “언제가 가장 행복한가”라고 묻는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 말할 것이다. 땀 흘리며 일하는 타인의 직업을 존중하고 자신의 일에 충실할 때 행복하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지라도 희망을 가슴에 품고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하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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