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전통 명절 문화의 미덕에 관해
상태바
[공존칼럼] 전통 명절 문화의 미덕에 관해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01.28 09:53
  • 댓글 0
  • 트위터 387,57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현대에 들어 우리의 전통 명절 문화는 많이 바뀌었다. 명절 차례를 지내는 가정은 점차 줄어들었다. 차례상 차림도 간소하게 하거나 그마저도 찾기가 드물어진 세태다. 전통 명절 문화는 한 해 한 해가 다르게 변화를 겪고 있다.

요즘 명절은 며느리에게는 흔히 ‘명절 노동’이라 불린다. “꼭 시댁을 먼저가야 하나?”, “처가에 먼저 가면 안 돼?” 등 명절을 앞두고 빚어지는 갈등, 또 명절증후군이라는 말로 명절 후유증 문제가 불거져 이래저래 명절은 편치가 않은 전통이 돼버린 세태다. 그러다보니 차례를 안 지내는 집도 매우 많아졌다. 또 며느리 입장을 고려해 명절은 각자 며칠 간 연휴를 보내는 날이 됐다. 시댁에 모여 가족끼리 밥 한 끼 먹는 일이 이렇게 갈등을 유발한다면 차라리 지내지 않느니만 못하다.

필자의 지인은 명절 무렵이면 일부러 여행을 떠난다. 아들, 며느리 마음 편히 쉬게 해주려고 그렇게 한단다. 또 굳이 교통이 막히는 명절날 모여야 할 이유는 없다고 주변 지인들도 말한다. 차례를 지낼 사람들은 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생략해도 뭐라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명절 차례를 지내는 사람을 가리켜 고루한 전통을 고수한다고 보는 시선은 우리처럼 차례를 지내는 이들에겐 불편한 건 사실이다.

명절 전날 대부분의 백화점과 대형 마트들이 휴무라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을 한다. 이번 설날만 해도 지난 명절과 달리 시장을 이용하는 이들의 수는 조금 줄어들었음을 체감한다. 그래도 전을 부쳐 파는 가게, 생선가게, 떡집은 크게 붐볐다. 무엇보다 요즘 재래시장에 가면 차례상차림에 필요한 모든 음식들이 만들어져 있다. 각자 먹을 양만큼 포장해 사기만 하면 된다. 집에서 준비할 음식만 간단히 하고 나머지는 구입하면 된다. 차례를 지내지 않더라도 명절 먹거리를 사러 일부러 시장을 찾는 이들도 많다.

어릴 적 명절에 대한 추억은 늘 가슴속에 깊이 간직돼있다. 필자가 나고 자란 부산은 흔한 동백꽃나무에 붉디붉은 꽃망울이 터지고 샛노란 꽃술이 드러나면 설날이 다가옴을 알 수 있다. 명절 때가 다가오면 동네 어귀부터 냄새가 다르다. 집집마다 담벼락에는 명절에 쓸 생선을 말리느라 걸려있고, 넓은 채반에는 가자미, 명태, 홍합 등 해산물이 널린다. 동네에 생선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다.

어머니를 따라 큰 시장에 가면 온갖 생선종류, 조개종류가 넘쳐나 흘러내리는 물에 신발을 적시기 일쑤였다. 제수용품을 파는 가게는 갖가지 공산품이 높이높이 쌓여있고,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크게 울리는지 귀를 막고 다녀야 할 정도로 시끄럽고 분주했다. 혼이 달아날 정도로 정신없는 채소가게를 지나 김이 피어나는 두부집, 떡집을 거쳐 마지막에 도착한 건어물 가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건어물집은 생선가게와 달리 바닥이 질퍽대지 않아서 좋았다. 줄줄이 걸려있는 온갖 건어물과 포장이 된 채로 일사불란하게 진열이 되어있는 말린 해산물과 견과류는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휘황찬란하다.

그중 건어물 가게의 으뜸은 꼭대기에 당당하게 걸려 있는 문어조(文魚條)다. 문어조는 문어오림을 말하는데 문어를 말려 납작하게 만들어 매화꽃, 국화꽃을 새기고 다리는 봉황새, 공작새 꼬리처럼 칼로 오려 모양을 만든다. 건어물 가게의 왕좌는 단연코 문어조이며, 차례상을 장식하는 최고의 음식이기도 했다. 부잣집은 문어조를 통째로 사가지만, 보통 가정은 다리 몇 개만 샀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 않으면 납작하게 말린 문어다리만 사서 어른들이 전 날 작은 칼로 비슷하게 오림 장식을 한다. 명절 전날 문어오림과 밤 깎는 일은 남자들의 몫이다.

요즘은 차례상에서 문어조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문어를 통째로 삶아 올리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사라졌다. 그래도 명절날 문어가 통으로 오르는 날이면 대번 차례상이 풍성하다. 상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자줏빛 윤기 있게 빛나는 문어의 빨판은 마치 단추를 촘촘히 달아놓은 듯하다. 문어의 효능은 민간요법으로도 활용된다. 필자가 어릴 적 몸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났다. 어머니는 “문어 삶은 물을 마시게 하고 삼베로 몸을 감싸고 있으면 낫는다”하여 그렇게 하였더니, 신기하게도 두드러기가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 지역마다 차례상 음식의 선호도가 차이가 나지만 부산의 차례상에서 귀한 대접은 문어다.

큰댁에 모여 어른들이 명절 차례를 지내는 동안, 열대여섯 명이나 되는 사촌들은 마당에서 소리 죽여 놀면서 차례가 얼른 끝나기를 기다렸다. 문어조는 차례상을 물린 후 어른들의 술안주용이지만 큰아버지는 생밤 한 톨과 문어조를 잘게 잘라 똑같이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우리는 손바닥으로 받은 음식을 옹기종기 모여 먹으며 떠들며 놀았다. 문어조 작은 조각을 입안에 넣으면 짭조름하면서 구수하고 금방 말랑해진다. 어떡하면 오래 먹을 수 있을까 싶어 씹지도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어느 틈엔가 입안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도 큰댁에 모여 차례상이 차려지면 눈길을 끄는 것은 문어조의 자태로 세월이 무척이나 흐른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명절 차례가 모두 끝나 걸어서 우리 집으로 가는 길에는 어느 집 담장 위로 청매화가 피어있었다. 곧 봄이 저만치서 다가온다는 신호다. 어린 시절 명절은 이처럼 마음 깊이 간직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전통은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가교 역을 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전통은 단지 구식이 아니라, 과거 우리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계승돼왔는지 그 미덕과 윤리관을 배울 수 있다. 전통은 현대의 복잡한 생활방식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또 혼돈 상태에서 만나는 최고의 안내자이기도 하다. 전통이란 유산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이어져왔고 또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전통은 우리 사회의 본질적 기반이기도 하다. 개인과 가정,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전통이 무엇인지 일관된 흐름을 정립하기는 힘들어도 해답이 필요할 때 전통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현재와 미래의 불확실성은, 과거 전통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매우 현명할 때가 많은 법이다. SW

murphy803@hanmail.net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