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왔다갔다 사과문' 문학사상사의 사과는 진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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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왔다갔다 사과문' 문학사상사의 사과는 진심인가?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2.0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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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문학사상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수상 거부와 수상 작가의 절필, 그리고 젊은 작가들의 '투고 거부'를 불러일으킨 '이상문학상 작품집 저작권 논란'이 지난 4일 문학사상사의 사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문학사상사는 오전에 올린 사과문을 '내용 수정'을 이유로 삭제하고 오후에 다시 올린 사과문에는 핵심적인 내용들을 제외했다. 마지막까지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문학사상사는 4일 "대상 수상작의 '저작권 3년 양도' 사항을 '출판권 1년 설정'으로 정정하고 표제작 규제도 수상 1년 후부터는 해제하겠다. 올해 이상문학상은 발표하지 않겄으며 기존 수상자의 의견을 수렴해 새로운 계약에 반영할 수 있도록 숙의와 논의 과정을 거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학사상사는 "입장 발표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 '직원 실수'라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 것, 시대정신과 시대가 요구하는 감수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반성한다. 상처와 실망을 드린 모든 분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진정어린 질타와 충고를 기꺼이 수용하겠다. 낡고 쇠락한 출판사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많은 조언 부탁드린다"며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거의 한 달만의 사과였다.

김금희 작가, 최은영 작가가 '우수상 수상작 저작권 3년 양도' 계약에 반발하며 수상을 거부하면서 촉발된 논란은 지난해 대상을 수상한 윤이형 작가의 '작품활동 중단' 선언으로 이어졌고 작가들의 거부 운동으로 확산됐다. 임지현 문학사상사 대표의 "직원의 실수로 들어간 조항" 발언, 그리고 이어진 긴 침묵과 닫혀진 홈페이지는 작가들, 그리고 독자들과의 소통을 아예 끊겠다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특히 윤이형 작가가 전 문학사상사 직원과의 통화를 인용한 "문학사상사 회장님이 아주 오래전부터 (저작권 내용이 담긴) 문서를 우수상 수상자들에게도 보내라고 강요하셨다고 들었다. 작가에게 저작권을 풀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풀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묶었다"는 말은 한 개인이 작가의 저작권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알리면서 출판사가 상과 저작권으로 작가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문학사상사 청탁 및 원고 연재 거부'를 선언하는 젊은 작가들의 목소리에 결국 문학사상사는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 사과의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오전에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문이 게시됐지만 문학사상사는 갑자기 이를 지워버렸다. '내부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최종 입장문을 다시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 오후, 사과문이 다시 올라왔다. 하지만 그 사과문에는 세 가지 중요한 사항이 빠져있었다. 

하나. 오전에는 '우수상 수상 조건을 전면 삭제하겠다'는 글이 있었지만 오후에는 이 문장이 빠지고 대상 수상작 조건을 정정한다는 내용만 들어가 있었다.  글만 보면 대상 수상작 조건만 정정했고 문제가 된 우수상 작품의 의 '저작권 3년 양도'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으로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둘. 오전에는 '이상문학상 운영에서 작가, 독자와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 대책위원회를 조직해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오후에는 이 내용이 빠진 채 "저작권과 관련된 상세 조항을 시대의 흐름과 문학 독자의 염원, 또한 작가의 뜻을 존중해 최대한 수정, 보완하겠다"는 '형식적인' 글만 남겨놓았다.

셋.  오전에는 윤이형 작가, 김금희 작가, 최은영 작가의 실명과 함께 이들에게 직접 사과하는 내용의 글이 있었지만 오후에는 "상처와 실망을 드린 모든 분들께 먼저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라는 말만 담겨 있었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문학사상사 관계자에게 들어본 각각의 이유다. 

하나. "'우수상 수상 조건'은 애초에 없었던 조항이 들어간 것이다. 없었던 조항을 '삭제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색하다는 생각으로 달지 않았다. 이 조항은 들어가서는 안 될 조항이었다. 고려할 조건이 없도록 할 것이다. 시정할 것이 있다면 시정하겠다".

둘. "독자와 함께 하겠다는 의도를 담아 쓴 것인데 착오가 있었다. 수정 과정에서 아직 보여드리기 어려운 내용이 공개가 됐다. 구체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숙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최종적인 입장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

셋. "사과 입장은 변함이 없다. 목소리를 내신 작가분들이 많기에 특정 작가만 언급하기보다는 전체를 다 포함해야한다고 봤다. 거론된 작가들에게는 따로 연락을 드려 사과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사과문을 오전과 오후, 서로 다른 내용으로 발표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들의 사과가 진심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문제의 발단이 된 '우수상 수상 저작권 양도'를 해결할 방법을 사과문에서 다 삭제하고 대책위원회 마련 등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외한 것은 문학사상사의 실천 의지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경영 악화로 본사 편집부 직원들이 대거 퇴직하며 일련의 상황에 대한 수습이 원활하지 못했다" 문학사상사가 밝힌 '늦은 사과'의 이유다. 저작권 양도 및 '강요 의혹'에 대한 입장에는 함구하면서 '경영 악화'를 거론한 부분도 문학사상사의 사과가 진심어린 사과인지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사과와 제도개선 의지 표명만으로 단번에 아물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구체성이 떨어지는 오후 입장문은 사과와 개신의지의 진정성을 더 의심하게 한다. 모든 것은 문학사상의 구체적 실천에 따라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이기에 상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길 바라보며 지켜보겠다. 동시에 앞으로 수상자, 수상후보, 심사대상 어디에도 제 이름이 거론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제 바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최초로 밝혔던 김금희 작가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진정한 사과는 실천'이기에 문학사상사의 실천을 지켜보자는 것이 작가들의 생각이지만 사과문조차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진정성을 기대하기란 힘들어 보인다. "이렇게까지 어렵게 사과를 했다. 이 문제가 절대 반복되는 일은없을 것"이라고 관계자는 강조했지만 '관행'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현 출판계의 상황은 여전히 이들의 실천 의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스스로 무너뜨린 권위를 스스로 세우라'고 말하고 싶지만, 세우기는 커녕 떨어진 권위를 부여잡고 여전히 '권위'만 외치는 출판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는 부분이다.

참고로 문학사상사 홈페이지는 아직도 '트래픽 초과'가 걸려있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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