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웍스에 투자로 영화산업 판도 바꾼 이재현 -이미경 남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오스카) 감독‧각본‧국제영화상까지 총 4개 부분을 석권한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우리 영화사상 이처럼 극적인 일이 또 있을까 싶다. 1919년 신파 연쇄극 <의리적 구토>가 제작되기 전까지 우리 영화는 불모지대였다. 물론 이 영화 이후에도 상황이 크게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이 가끔 들려 오긴 했으나 변방에 머물러 있었음은 부인할수 없는 현실이었다. 사실 199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아카데미는 물론 칸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 등의 현장에서 우리 영화를 소개하는 부스(booth)조차 찾기 힘들었다.
우리 영화가 제대로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때부터 아니었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영화의 부흥에 이바지 하자고 시작한 이 영화제는 이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부단한 노력으로 세계 각국의 배우, 감독, 제작자, 평론가, 배급사들과 교류하여 그 영향력을 넓힌 것이 칸 영화제에 이어 이번 아카데미에서도 돌풍을 일으킨 요인이 아니었나 한다.
부산국제 영화제를 오늘날 자타공인 영화제로 만든 사람은 김동호 씨다. 문공부(문화부)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늘 우리 영화 진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권위 있는 영화제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 끝에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출범시켰다. 그는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아 15년간 영화제를 이끌다 물러나 지금은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광주국제영화제, 여수국제해양영화제, 춘천국제영화제, 충무로국제영화제 같은 영화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으나 모두 지리멸렬했다. 그 옛날 잘나가던 도쿄 영화제와 홍콩 영화제도 이젠 부산 영화제 앞에선 맥을 못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뒷받침도 큰 역할을 했다. 어찌 보면 이들이 없었다면 그동안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 등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손녀이자 이재현 회장의 친누나다.
이 회장은 지난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프리 카젠버그가 만든 드림웍스에 3억 달러(한화 약 3,500억원)를 투자하면서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남산에 당시 최고급 시사장을 만들었고 카젠버그, 안토니오 반데라스(영화 <마스크 오브 조로> 주인공) 등을 초대하는 등 새로운 기획과 시스템으로 영화판을 흔들어 놓았다. 회사 경영진은 물론 다수의 영화 전문가들도 “저러다가 지치면 그만두겠지”하는 심정으로 지켜봤다. 사실 이후 몇 년 간 적자가 누적되는 등 위기도 있었으나 1998년 4월, CGV강변 11 극장의 문을 열었고 1990년대 후반엔 케이블방송 사업에도 진출했다. 1997년엔 음악전문 방송채널인 Mnet까지 인수하면서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됐다. K팝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데도 두 사람의 지원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경 부회장은 1995년부터 CJ엔터테인먼트를 이끌어 300편이 넘는 한국 영화에 투자했다. 이번에는 <기생충>의 책임프로듀서(CP) 자격으로 시상식에 참석해 자신의 노고를 보상받았다.
그동안 우리 영화는 힘든 길을 걸어왔다. 국내와 아시아권에서 맴돌다가 이제 세계적인 영화가 되었다. 주먹구구식의 영화판에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이 뛰어들어 우수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유망 감독과 연기자를 발굴하고 재투자 하면서 지속적인 해외 영화계 교류 등으로 힘을 뭉친 결과다. 앞으로도 뒤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영화계를 이끌어 주는 사람이 많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한 번 이번 쾌거에 박수를 보탠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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