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코로나 브리핑, 화면에서 사라진 수어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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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코로나 브리핑, 화면에서 사라진 수어통역사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2.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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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 사진= KBS뉴스 화면 캡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 사진= KBS뉴스 화면 캡쳐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방송에서 '신종 코로나' 상황 브리핑 중계를 하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위기소통담당관입니다. 오늘 중앙대책방역본부 정례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소개에 이어 발표자가 연단으로 나왔다. 그 순간, 방송의 소리(오디오)가 끊어졌다. 영상만 있고 소리가 없는 상태로 방송이 진행됐다.

가상의 상황이기는 하지만 만일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방송사는 물론 질병관리본부에 민원이 쇄도했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으로 혼란스러운 국민들의 마음을 더 어수선하게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 4일 중앙대책방역본부(방역본부) 브리핑 자리에 방역본부 본부장과 본부장의 발표를 통역하러 온 수어통역사가 나란히 섰다. 첫 화면은 두 사람 그대로 그렇게 나갔다. 하지만 본부장의 브리핑이 시작되자 수어통역 화면이 사라졌다. 브리핑을 하는 방역본부 대책본부장만 화면에 나왔다. 질병관리본부는 물론 이 상황을 중계(방송)하던 모든 방송사와 매체(유튜브 등)들이 그랬다. 

앞에서 말한 '가상 상황'. 그것이 청각장애인에게는 '실제 상황'이 됐다. 수어통역이 없는 화면은 늘 보아온 비장애인 시청자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를 것이다. 

신종 코로나가 급속히 퍼져나가자 지난 1월부터 한국도 방역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또한 정부는 브리핑을 통하여 신종 코로나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여 국민들의 안전과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브리핑을 시작하고 10여일이 넘었지만 수어통역은 없었고,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어 불안해하는 청각장애인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필자에게 브리핑 내용을 물어오거나 확진자가 거쳐 간 곳이 어디인지, 그곳에 가도 되는지를 묻는 청각장애인도 있었다. 그래서 지난 2월 3일 ‘장애벽허물기’라는 단체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정부에 대한 차별 진정을 했다. 

다행히 정부도 빨리 대응해 차별 진정 다음날부터 수어통역사를 배치했다. 문제는 방송이 지금까지 했던 관행대로 브리핑을 하는 사람만 카메라에 담고 통역하는 수어통역사는 빼버린 것이다.

장애인 관련 법률 가운데 '한국수화언어법'에는 “수어는 한국어와 동등한 언어”라고 명시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관련 내용이 있는데, 정보를 제공할 때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한국수어 등”을 제공하라고 하고 있다. 

한국수화언어법에서 말하는 ‘동등’은 한국어와 같은, 언어로서 지위가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하여 신종 코로나 브리핑 등을 청각장애인들이 수어통역을 통하여 볼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동등’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주요한 방송 내용은 모두 수어를 통하여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방송의 수에 비례하여 통역의 수도 유사해야 한다는 양적인 측면이다. 

둘째는, 수어통역을 보는 수용자의 측면이다. 일반적으로 수어통역이 클수록 판독이 유리하다. 비장애인이 작은 소리보다 큰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청각장애인들은 발표자와 수어통역사 화면 구성을 1:1 또는 이와 유사하게 하는 것을 원한다.

방송의 사회적 기능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정보제공이다. 1인 미디어 시대이고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주요사항을 취재하거나 중계할 수 있는 권한은 아직까지는 기존 매체들에게 있다. 이 매체 대부분은 위의 법률에 적용을 받는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주요한 방송에는 수어통역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수어통역의 크기를 화면이 허용하는 범위까지 확대해야 한다. 방송 채널의 특성이나 프로그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법률에 정한 바대로 청각장애인들의 ‘동등한 접근’을 충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해 청각장애인들이 KBS 본관 앞에서 집회를 한 적이 있다. <KBS 9시 뉴스>에 수어통역을 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이다. KBS는 공영방송이고, <KBS 9시 뉴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통 종합뉴스’라고 홍보를 하는 만큼 누구나 다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도 수어통역을 통하여 볼 권리를 달라고 한 것이다. 

당시 KBS는 청각장애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방송사의 입장에서 KBS의 9시뉴스는 많은 시청자들이 보기에 깨끗한 화면을 내보내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이 왜 존재하는 지를 생각한다면 수어통역을 제공해야 한다. 깨끗한 화면이 아니라 정보제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어는 한국어와 동등한 언어이다. 주요한 방송은 수어통역을 제공하여야 한다. 그리고 수어의 화면크기 또한 정보제공의 동등성을 따라야 한다. 이번 신종 코로나 중계방송을 계기로 방송인들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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