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구 예비후보들 '봉준호 공약', 결과물에 기생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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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구 예비후보들 '봉준호 공약', 결과물에 기생하는 정치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2.1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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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공평네거리에 걸린 봉준호 감독 축하 현수막. 사진=뉴시스
대구시 중구 공평네거리에 걸린 봉준호 감독 축하 현수막.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대구에 출마하는 자유한국당 총선 예비후보들이 잇달아 '봉준호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10일(한국시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계의 중심이 된 영화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이 대구 출신이라는 이유다. 

봉준호 감독은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이사했으며 봉 감독의 아버지는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 가톨릭대학교)와 영남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 출신 감독의 성공 소식이 전해지자 대구 달서병 예비후보로 등록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봉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영화박물관을 설립해, 영화를 문화예술 도시 대구의 아이콘으로 살려야한다"면서 자신의 지역구인 달서구에 '봉준호 영화박물관'을 세우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자 대구 중구 남구에 출마하는 배영식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는 ▲'봉준호 영화의 거리', '봉준호 까페거리' 조성 ▲봉준호 동상 건립 ▲봉준호 생가터 복원 ▲<기생충> 조형물 건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미국, 러시아, 유럽 등은 유명 인물의 거리를 만들고 동상을 세우고 이벤트를 열어 명성을 계승하는 등 세계적인 관광명소를 만들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런가 하면 역시 대구 중구 남구에 출마한 도건우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는 ▲'봉준호 거리', '봉준호 타운' 조성 ▲'봉준호 명예의 전당' 건립 ▲'한국판 유니버셜 스튜디오'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도 예비후보에 따르면 '봉준호  명예의 전당' 내에 '기생충관'을 설치하고 영화에 나오는 반지하 집을 만들어 계층 갈등 등 영화 전반 스토리를 보여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봉준호 감독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에 문화공간을 만들어 관광수익을 늘리겠다는 의도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봉 감독의 수상 소식 후 너도나도 허황되기까지 한 '봉준호, 기생충 공약'을 내세우고 대구와의 인연을 강조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예술인의 인기에 기생하려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정치를 '기생충'으로 만든 꼴이다.

여기에 봉준호 감독은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당시 정부는 그의 민주노동당 당원 이력을 들며 '강성 좌파'로 그를 분류했다.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 아카데미 수상의 숨은 조력자로 불리고 있는 이미경 CJ 부회장도 모두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에게 낙인을 찍었던 이들이 바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었고 이들은 아직도 문화인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런 이들이 지금 '봉준호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들 예비후보들의 모습은 '참으로 시의적절하지 않다'. 영화의 내용,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생각하지 않고 '아카데미 수상'이라는 결과물에 취해 그 결과물에 숟가락을 얹으려하는 이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부끄러운 한국 정치'의 단면을 보고 있다며 씁쓸해하고 있다. 

결과물에 기생해 자기 이름을 알리려하는 정치인들의 '구태'를 언제까지 봐야하는 것일까? . 예비후보들은 '네가 자랑스럽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할 지 모르지만 유권자들은 '계획이 뭐에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만약 제대로 <기생충>을 봤다면 과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혹시 '무계획이 상계획'이라는 말만 생각하고 저지르고 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고로 <기생충>은 주 52시간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아카데미 상을 거머쥐었다. 세계가 <기생충>에 열광하고 있는 이유는 영화가 보여주는 빈부의 차이를 세계인들이 인정하고 이를 바꾸고 싶어하는 열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기생충>을 정말 정치에 활용하고 싶다면 이 부분을 잘 살펴볼 것.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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