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생충’ 관광 마케팅...빈곤 포르노, 빈곤 동물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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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생충’ 관광 마케팅...빈곤 포르노, 빈곤 동물원인가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2.1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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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4관왕 ‘기생충’, 韓 빈부격차 민낯 보여줘
서울시 관광 활성화 대책, “기생충 촬영지를 한류 관광 상품화로”
빈곤 해결 없는 관광지 개발...“빈곤 포르노, 빈곤 동물원” 비판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한 이후로 영화 속 한국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연일 뜨거워지고 있다. 이와 함께 영화 속 잘 짜인 한국 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도 높아지는 모습이다.

봉 감독이 표현한 영화 속 한국은 빈부격차라는 사회 문제를 봉 감독의 말처럼 중립적인 위치에서 보여주고 있다. 대만 카스테라 사태와 ‘짜파구리’에 한우를 넣는 행동 등 한국적인 영화 속 장치들은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임에도 해외로부터 공감과 인정을 받고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관객과 팬은 영화가 주는 감동과 인기를 영화 밖에서 만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영화 속 촬영 장소는 영화의 흥행 이후 명소로 자리 매김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영화 속 빈곤이 아닌, 지금도 현실에서 계속되는 빈곤의 민낯이라면 어떨까.

서울시는 14일 ‘서울관광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대책 내 주요 단계 중 하나로 영화 기생충 촬영지를 대표 투어코스로 개발해 한류 관광 상품화를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대표 장소에는 영화 속 돼지쌀슈퍼(우리슈퍼)와 ‘가택 동네 계단’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의 빌라 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여행 수요가 급감하면서 관광업계·소상공인이 입는 타격을 최소화 하겠다는 의도도 밝혔다. 영화 인기에 힘입어 관광지도 개발한다는 의도로 해석되니, 배우 송강호의 영화 속 대사처럼 “참으로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시의적절’이 상징하는 것과 서울시의 의도가 과연 서로 적절한지는 의문이 든다. 서울시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관광지 개발 동의를 얻었을지 모르나 영화처럼 반지하 빌라 언덕에서 살아본, 또 지금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빈곤의 민낯은 영화처럼 유쾌하지 않다.

사진=영화 '조커' 갈무리
사진=영화 '조커' 갈무리

이 때문에 서울시의 이 같은 관광지 개발 계획은 네티즌들로부터 가난 포르노, 이른바 ‘빈곤 포르노’ 아니냐는 비판을 맞고 있다. 빈곤 포르노는 포르노처럼 자극적인 빈곤의 실상을 촬영·연출까지 해 후원을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네티즌들은 서울시의 해당 관광 개발 계획이 실제 빈곤문제에 대한 해결보다 이를 영화 흥행에 힘입어 촬영지-나아가 촬영지 거주민들을 명소의 한 요소로 두려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심하면 “촬영지 거주민을 동물원의 동물로 만드는 것”이란 비판도 쏟아지는 모습이다.

이번 논란에 대해 굳이 박 시장이 과거 서민체험이라는 명분으로 옥탑방 생활기를 한 것까지 언급하는 것은 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실제 촬영지인 마포 아현동 일대는 아현동 뉴타운 재개발이 추진되는 곳이나, 2003년 이래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서울 한복판에서 다세대주택이 뒤엉킨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정치인 개인의 빈곤 체험은 개인으로 끝나나, 이를 정책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일반 시민들에게 미치는 법이다. 또 영화 바깥인 현실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는 빈곤마저 관공 마케팅의 수단으로 다뤄짐에 기쁘게 받아들일 이가 몇이나 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기생충> 만큼 전세계적 흥행을 끈 영화 <조커>가 그러한 예다. 영화 조커 속 빈민가 계단 장면은 뉴욕 브롱크스의 우범지역 중 한 곳이다. 조커의 흥행 이후 해당 촬영지도 기생충처럼 영화 팬들의 방문 명소가 됐다.

반면 원래 지역 주민들이 다니던 계단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거주민들은 되려 불편을 안게 됐다. 오죽하면 최근에는 계단 위 춤추는 장면을 촬영해 시민의 통행을 방해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계단 근처에 붙을 정도다.

영화 촬영지에 사는 거주민들의 불만은 단순 통행 방해만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느끼는 빈곤의 민낯이 국가적 문제로 여겨짐이 아닌, 국가가 나서서 관광객들의 관광 상품으로 여겨짐에 따름일 것이다. 서울시민의 시장이라면 서울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지 의문이 든다. 가난마저 구경거리가 되는 시대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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