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농인들의 외침 '수어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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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농인들의 외침 '수어독립'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2.1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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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에서 '수어독립'을 외치는 장애인들. 사진=김철환
청와대 앞에서 '수어독립'을 외치는 장애인들. 사진=김철환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말과 글이라는 게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인데 그렇게 사라진 조선말이 한 두 개가 아니거든요.” 영화 <말모이>(엄유나 감독, 2019)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우리말 원고뭉치들을 보고 놀라는 주인공 ‘판수’(유해진 분)에게 그를 안내하던 사람이 한 말이다.

한국을 지배한 일제는 1937년 이후 황국 신민화 정책(皇國臣民化政策)을 강화했다. 강제로 일본식 이름을 쓰게 하고(창씨개명) 일상에서 우리말의 사용을 금지했다. 학교에서는 우리말 교육을 완전히 폐지했다. 그런 혹독한 탄압 곳에서도 주시경 등 학자들을 중심으로 우리말을 지키려는 노력들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말을 지키기 위하여 당시 애국계몽단체인 계명구락부를 중심으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 ‘말모이 작전’을 진행했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지역어(방언)를 적어 보내주었다. 전국 각지에서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한 일에 참여했던 것이다. 일제의 눈을 피해 진행했던 우리말사전 만들기는 한 마디로 ‘작전’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 다른 ‘말모이 작전’, 자신들의 언어와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했던 이들이 있다. 억압받던 언어인 수어(手語)를 지키려 했던 농인(聾人)들이다. 그들은 온갖 차별 속에서도 자신들의 언어인 수어를 꿋꿋하게 지켜왔다.

지난해 이맘때 청와대 앞에서 ‘수어독립선언’ 행사가 있었다. 이 자리에는 농인들과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수어독립만세!’ 라고 적힌 손깃발을 들고 만세도 불렀다. 청와대 민원실에 그들의 요구서도 전달하였다.

인류 언어의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손짓이나 표정 등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언어의 초기 모습이며 수어의 초기 모습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음성언어가 대다수의 소통방식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대와 중세를 거치는 사이 장애인은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농인들의 수어는 천시되었고, 보편적인 언어로서 정착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760년 프랑스의 신부 레페(Abbe de L’Epee)에 의하여 최초로 수어로 교육을 하는 농학교가 만들어졌다. 수어로 교육하고 수어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이러한 교육방식은 많은 지지를 얻었고, 유럽으로 확대되어 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880년 국제농교육자회의(Conference of Teachers of Deaf)에서 농학교의 수어사용 금지 선언이 나오게 된다. 이 선언 이후 국제적으로 농교육 현장에서 수어가 사라졌다. 이러한 수어의 암흑기는 100여년 이상 지속되었다. 수어를 통하여 소통하고 사회생활을 하던 농인들도 오랜 세월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20세기 들어오면서 인권이 보편적인 이념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언어학과 뇌과학을 통하여 수어가 언어로 인정되면서 수어에 대한 관점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유럽을 중심으로 수어를 언어로 인정하는 법률들이 만들어졌다. 국제사회도 국제장애인권리협약(CRPD)을 만들며 언어의 하나로 수어를 포함하였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수어는 최근까지도 차별받는 언어였다. 농인들은 자유롭게 수어를 배울 수 없었다. 가정은 물론 학교에서조차 그랬다. 학교에서 농인들이 수어를 사용하다 들키면 채벌을 받기도 하였다. 일부 청인(聽人)들은 농인들에게 음성언어의 사용을 강요하는 등 농인들을 억압했다. 농인이되 농인이 아닌 척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려 2011년 농인들이 일어났다. ‘말모이 작전’처럼 수어법을 만들기 위한 장애인 연대조직을 만들고, 운동을 진행했다. 몇 년간의 험난한 운동을 통하여 결국 “한국수화언어법”(한국수어법)을 만들어 냈다. 법률이 만들어지며 우리나라에서 수어는 농인의 언어이며, 대한민국의 언어의 하나로 인정된 것이다. 농인들은 수어로 소통하고 수어로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수어는 보편적인 언어가 아니다. 코로나19 정부 브리핑 초반에서 수어통역을 지원하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청와대를 비롯하여 공공기관에 수어로 구축된 정보가 거의 없는 것도 이를 말해준다. 농인에 대한 교육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민간영역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수어법이 만들어졌지만 수어에 대한 차별은 아직도 진행형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농인들이 청와대 앞에 모였던 것이다. 100여 년전 우리의 민초들이 대한독립을 외쳤던 것처럼 ‘수어독립만세’를 외쳤다. 독립된 언어로 수어를 인정하고, 수어와 농인에 대한 차별을 그만두라고 말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농인들이 외침을 기억해야 한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이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글을 맺으며, 이날 사회를 봤던 장애인단체 관계자가 영화 <말모이>버전으로 했던 말을 적어본다. “수어가 농인의 정신을 담는 그릇임에도 오랜 세월 청인들의 억압으로 쓸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음성언어를 쓰라는 강요나 농인과 수어에 대한 차별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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