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수어 인사 릴레이' 현영옥씨 "간단한 수어 인사로 눈을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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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수어 인사 릴레이' 현영옥씨 "간단한 수어 인사로 눈을 맞추세요"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3.0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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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 신체 접촉 없이도 '눈맞춤'으로 감정 전할 수 있어"
"능력 있지만 정보 차단, 통역 지원 당연시되는 문화 되어야"
"‘일반학교에서 수어 교육해 자연스럽게 대화 여건 만들었으면"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코로나19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제약하고 있다. 사람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고 만나도 악수나 포옹을 하지 않는다. '주먹인사'가 대안으로 나왔지만 이 역시 신체 접촉 우려를 낳고 있다. 인사가 실종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런 부분이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에 한 가지 제안이 들어왔다. '수어로 인사는 어떠세요?' 이 제안을 한 이는 나사렛대학교 재활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농인 현영옥씨다. 농인(청각장애인)만 쓰는 것으로 인식하던 수어를 신체 접촉 없이도 정을 표현하는 인사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 청인(비장애인)들이 수어를 '수단'이 아닌 '한국어'로 인식하고 관심을 가지도록 하자는 데 인식을 같이한 사람들은 '수어 릴레이'를 통해 그 뜻을 전하고 있다. 

'수어 인사 릴레이'를 제안한 현영옥씨(왼쪽)와 수어통역사 신환희씨가 수어로 인사를 하고 있다. 서로의 '눈맞춤'이 포인트다. 사진=임동현 기자
'수어 인사 릴레이'를 제안한 현영옥씨(왼쪽)와 수어통역사 신환희씨가 수어로 인사를 하고 있다. 서로의 '눈맞춤'이 포인트다. 사진=임동현 기자

'수어 인사 릴레이'를 하게 된 배경은?

지난달 중순부터 시작했다. 우연히 TV를 보는데 보통 악수를 하던 국회의원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접촉을 하면 안 된다고 하니까 팔꿈치치기, 주먹치기, 작은 하트로 인사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나라에는 한국어와 한국수어 두 언어가 있는데 수어를 활용해서 인사를 하면 좋지 않을까, 직접적인 신체 접촉 없이 한국수어로 표현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제 페이스북에 '수어 인사 제안'을 올리고 아들과 함께 수어로 인사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원래는 개인적으로 올린 것이었는데 어느 분께서 '캠페인식으로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셔서 해시태그로 주요 인사들을 거론하고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릴레이에 참여할 세 분을 지목하는 식으로 진행을 했다. 

농인들도 수어통역사들도 '이렇게 인사하면 좋겠다'며 호응해주셨고 국회의원들이나 지자체장, 리더들이 이 캠페인을 보고 깨달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방법을 몰라서 그런지 그분들의 반응이 뜨겁지는 않았다. 수어를 아는 분들에게는 큰 호응이 있었지만 모르는 분들에게 잘 전해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일반 청인들에게 '수어'가 아직 낯선 게 현실인데 

우연히 유튜브를 봤는데 어떤 청인이 수어로 '안녕하세요'를 하고 음성언어로 영상을 진행했다. 수어 관련 교육이나 영상은 아니었는데 그 청인이 수어로 인사를 하고 서툴지만 수어를 하는 게 너무 반가워 영상을 계속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하나만 알아도 이렇게 반가운데 이 유튜버처럼 수어에 거부감이 없고 관심을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동사무소 등 관공서를 찾을 때 어려움이 정말 많다. 농인이라고 하면 공무원들이 너무나 당황해하고 '어떻게 해야해'하면서 만남을 피하려하고 처리를 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다. 그분들이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만큼 수어와 농인에 대한 인식이 아직 낮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국회의원 한 사람이 TV에서 한 번만이라도 수어를 보여줬다면, 다른 분들이 수어가 한국의 언어고 수어로 인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청인들이 수어를 어색함없이 수용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있다. 인지도 높으신 분들이 수어로 인사하는 예가 없기에 확산이 어려운 것 같다. TV 공익광고처럼 간단한 수어를 재미있게 전하며 노출을 많이 한다면 청인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수어에 대한 인식도 바뀔 것이라 본다. 

예전에 비하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고 지난 2016년에는 수어언어법이 제정되기도 했지만 아직 청인 사회가 이에 대한 관심이 없어 농인에 대한 대우가 전혀 없기에 정보를 얻지 못하고 소외받고 있다. 겉모습도 청인과 다를 바 없고 능력도 있는데 정보가 차단된다는 게 안타깝다. 우선 관공서만이라도 농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아서 잘 다져줬으면 한다. 

더 나아가서는 영어처럼 일반학교에 수어 과목을 신설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수어를 배우고 수어로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최근 재난방송 등에서 수어통역이 실시되고 있고 이번 코로나19 브리핑의 경우 수어통역사가 본부장 옆에서 수어통역을 하는 모습이 한 화면에 잡히고 있다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정부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을 하게 됐는데 TV의 경우 수어통역사가 조그맣게 나와 집중해서 보기가 힘들었다. 표정도 보이지 않고 화면 끝으로 가다보니 팔이 잘리는 느낌도 있었다. 통역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방송국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자막 등이 있어야하기에 우측 끝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더라.

코로나19 브리핑에서 본부장과 통역사가 한 장면에 나오는데 처음 브리핑 때는 방송사가 본부장만 보여주고 통역사를 보여주지 않았다. 문제가 지적되자 이제 방송에 통역사까지 나오는데 보기 참 시원했다(웃음). 그런데 아직도  "시청에 방해된다", "필요없다", "본부장만 보여달라'는 댓글이 보인다. 안타깝다. 

페이스북을 통한 '수어 인사 릴레이' 제안. 사진=현영옥 페이스북 캡처
페이스북을 통한 '수어 인사 릴레이' 제안. 사진=현영옥 페이스북 캡처

지금도 농인들이 문화활동을 하기가 어려운데

새해가 왔을 때 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필라테스나 요가를 하고 싶었는데 나 혼자 생각이 많아지더라. '40분 운동하자고 통역사를 불러야하나', '통역사가 올 수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복잡해 결국 포기했다. 한 친구는 네일 아트를 배우려고 했는데 원장이 통역사가 없어서 난감해하니까 친구가 자기가 직접 통역사를 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통역사는 학원까지 가는 거리가 멀고 10회 강의인데 10회까지 할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 농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관장의 얼굴 표정을 보고 등록을 결정한다고 한다. 표정이 괜찮으면 접수하고 안 좋으면 도로 나간단다.

한국영화를 보고 싶은데 보기가 어렵다. 자막이 없다. 자막이 있는 '가치봄영화'가 있기는 하지만 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보고 싶을 때 볼 수가 없다. 영화 본 지가 10년이 넘은 것 같다. 항상 외국영화만 봤고 한국영화는 예고편을 보고 '아, 이런 영화가 있구나'라고 아는 정도다. 뭔가 억압받는 느낌이 있다. 통역이 제공되면 교육이나 문화 활동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농인도 같이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통역 지원이 당연시되는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 수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고(웃음).

청인들이 수어를 알아야하는 이유는?

청인들이 수어를 통역사처럼 잘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가령 지하철역에서 '4번 출구가 어디냐?'라고 물을 때 간단한 수어, 혹은 농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제스처를 통해 안내를 하고 설명을 해주면 된다. 관공서에 계신 분들이 기본 수어만 알아도 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다.

꿈이 큰 지는 모르지만 대통령께서 대국민 담화 등을 할 때 "한국의 언어는 한국어와 한국수어가 있다"고 말해주시고 청와대에도 수어통역사가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리더들이 모범을 보이면 그 밑에 있는 분들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 본다. 

'수어 인사 릴레이'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전해달라

코로나19가 심각하기에 접촉이 많이 줄어드는 것 같다. 음성언어로 대화하고 마스크를 쓰고 대화하는데 우리는 마스크를 쓰면 대화가 상당히 어렵다. 얼굴, 입 모양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에게 마스크를 씌우는데 마스크를 쓸 때마다 대화가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마스크를 안 씌우면 감염의 위험이 있어 참 어렵다. 마스크를 쓰고도 인사를 할 수 있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수어다. 

수어를 손으로만 표현하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많은데 얼굴 표정, 목을 '끄덕끄덕'하는 것도 모두 의미를 담고 있다. 일례로 눈썹을 올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표정을 지으면 질문의 의미다.

수어를 하면 상대방의 눈을 볼 수 있다. 눈맞춤으로 정이 표현된다. 수어는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다. 서로의 감정이 통하는 언어다. 

수어를 통해 상대와 눈을 맞추고 감정을 전하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이 부분을 알게 되면 그동안 무관심했던 청인들도 수어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 믿는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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