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코미디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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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코미디가 그립다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03.1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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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부터 2년 간 KBS2 채널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일번지'에서 방영된 한국 최초 시사 코미디 코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의 모습. 사진=KBS
1986년부터 2년 간 KBS2 채널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일번지'에서 방영된 한국 최초 시사 코미디 코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의 모습. 사진=KBS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에게 웃음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 간격을 유지하고, 대화도 줄어드니 웃을 일도 없다. 재기발랄한 농담이나 위트도 찾기 힘들다.

사람들의 표정도 다들 무겁고 침울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림, 웃음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럴 때 한바탕 웃을 수 있는 TV 코미디 프로그램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언제부터인가 TV 채널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음을 불현듯 깨닫는다. 그러다 보니 코미디언을 보는 것도 힘들어졌다. TV 속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웃음을 선사하던 그 많던 코미디언들 말이다.

코미디, 코미디언이란 명칭은 꽤 오래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개그, 개그맨으로 불리면서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하지만 코미디 프로그램이 종적을 감추다보니 어느새 정치·시사 풍자 코미디도 함께 사라졌다. 코미디의 정수는 사실 정치·시사 풍자가 아닌가 싶다. 정치 현실을 꼬집고 정치인의 특징을 포착해 아슬아슬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풍자야말로 코미디의 묘미다.

코미디언이 정치 풍자에 두려움을 느끼고 금기시 되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가? 정치 풍자가 집권세력의 눈치를 봐야하고 위축돼 자체 검열을 하다보면, 정치 풍자는 결국 멸종되기 십상이다. 지금이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풍자는 계속돼야 코미디가 지속된다.

정치·시사 풍자 코미디는 한국 사회에서 1980년 대 중반 무렵 본격적으로 등장해 온 국민에게 통쾌함과 웃음을 선사했다. 코미디언 故 김형곤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은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정치인·재벌·기업가들이 성역 없는 단골 소재로 돼 국민에게 한바탕 웃음을 주었다. 정치·시사 풍자 코미디는 참여정부 당시까지만 해도 계속 됐지만, 어느새 슬금슬금 시들해지더니 현재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보니 코미디 프로그램도 점차 TV에서 사라졌다. 코미디언의 과장된 몸짓과 촌철살인 폭소를 자아내는 말투도 언제 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 코미디언이 만들어내는 유행어를 초등학생들이 흉내 내는 광경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전 국민이 코미디언의 톡 쏘는 유행어에 웃음을 터트리던 때가 언제였던가.

세상이 달라져 코미디에 표현의 자유도 갖가지 제약을 받아 더 힘들어졌다. 십 수 년 전 TV 개그 프로그램 인기코너에서 히트한 유행어가 떠오른다.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이 “나와 결혼해 줄래?”라는 말을 “내 아를 낳아도!”라 표현한 유머는 한동안 전국적인 유행어이자 연인 간 구애의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만약 지금 이런 개그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장 페미니스트들의 검열과 비난으로 해당 개그맨은 여성혐오로 치부돼 원성을 샀을 것이다.

최근에 어느 여성 개그맨은 팟캐스트 방송에서 ‘금수저’ 주제로 농담을 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을 슬쩍 빗대자 여론의 질타를 받고 방송에서 물러났다. 정치·시사 풍자에 있어 금기가 많아지고, 유머에서 혐오성 발언이냐 아니냐를 두고 검열의 잣대를 대기 시작하면 코미디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디지털 기술혁명 시대에 우리의 문화적 환경이 많이 바뀐 점은 인정한다. 그러다보니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그 많던 개그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더러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입담을 들려주기도 하고, 절친한 개그맨들을 불러 합동 방송도 한다.

하지만 많이 아쉽다. 코미디물을 방송할 때 생긴 에피소드, 동료 개그맨이나 특정 연예인들에 관한 신변잡기 방송들이 주를 이룬다. 금기와 검열로 TV 채널에서 밀려난 개그맨들의 생존기다. 그나마 유튜브를 통해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그들이 생존해 있음을 확인한다.

또는 라디오나 TV 버라이어티쇼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를 맡아 웃음을 주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본격적인 코미디 프로그램 편성은 점점 어려워지고, 신인 코미디언의 등장은 불가능해진다. 서구처럼 코미디 클럽에서 진행하는 라이브 ‘스탠드업 코미디(Stand-Up Comedy)’가 정착한 것도 아니다. 강남 등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 인기를 얻는다는 소식도 간혹 들리지만, 여전히 코미디계 전망은 어둡다.

근래 들어 방송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의 영역이 점점 희박해졌음은 사실이다. 씨름·축구·농구·야구 선수 같은 전직 스포츠 스타들이 예능 버라이어티쇼에서 웃긴다. 연예인 가족들의 리얼리티 쇼에서 대리 웃음을 찾는다. 그러다보니 방송사도 예전처럼 간판급 코미디 공개 프로그램 편성을 꺼리게 된게 아닌가 한다. 코미디언들은 자연스레 밀려난다.

방송에서 코미디물이 사라짐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유머와 위트, 풍자를 두려워하는 점도 마찬가지다. 억지 미소라도 지으면 낫다는 말은 맞다. 미소가 사라지면 표정도 침울하고 얼굴도 굳어진다. 웃음을 지으면 표정에 변화를 주고, 오장육부까지 영향을 미쳐 건강에도 이롭다. 한바탕 웃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면서 머리도 맑아지는 건 웃음이 가진 묘약이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가 너무 길어지고 있다. 시민들이 잔뜩 위축된 채 마스크를 쓴 굳은 표정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상황을 보노라면, 정말 하루빨리 이 사태가 끝나길 바란다. 이럴 때 코미디라도 보며 웃을 수 있다면 위안이 될 터인데 말이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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