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색다른 이름을 가지고 싶을 때, '수어이름'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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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색다른 이름을 가지고 싶을 때, '수어이름' 어때요?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3.1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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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수어이름, 이 수어이름에는 한글이름이 아닌 글쓴이가 수어를 배웠던 장소의 의미가 들어 있다. 사진=김철환
글쓴이의 수어이름, 이 수어이름에는 한글이름이 아닌 글쓴이가 수어를 배웠던 장소의 의미가 들어 있다. 사진=김철환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얼마 전 길에서 우연히 농인(聾人)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였다. 반갑게 악수까지 했지만 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정확히 그의 수어(手語)이름은 알겠는데, 본래 그의 한글 이름이 생각나지 않던 것이다. 나는 멋쩍게 그에게 한글 이름을 물어보며 '나도 농인을 닮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누구에게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다못해 동물이나 식물이나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들에는 이름이 있다. 그리고 이름은 언어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존재는 언어라는 틀을 통하여 이름이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말을 한 듯도 하다.

우리의 이름에는 윗대의 내력이 들어있다. 젊은 세대들은 조금 다르지만, 기성세대의 이름에는 집안의 내력이 남아 있다. 성에는 조상에 대한 흔적이 있고, 이름에는 집안 항렬이 기록되어 있다. 농인들도 한국문화권 안에 있으므로 당연히 한국어 이름을 사용한다. 하지만 농인들은 청인(聽人)들이 사용하는 한글이름 이외에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수어이름’ 혹은 ‘얼굴이름’이라고 한다. 

수어이름에는 조상의 내력이나 항렬 등 과거에 대한 기록은 없다. 신체적인 특징, 그 가운데 얼굴의 특징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눈썹이 짙다든가, 보조개가 있다든가, 얼굴에 점이 있다든가, 얼굴이 갸름하다면 그에 해당되는 수어에 성별을 덧붙여 이름을 만든다. 수어이름을 얼굴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수어이름이 주로 얼굴의 특징을 가지고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얼굴의 특징만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농인의 전반적 신체적 특징, 태도, 성격 등을 가지고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얼굴의 특징이나 신체적 특징, 태도 등을 가지고 이름은 만들다보니 눈에 잘 띄는 흉허물을 가지고 이름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예전에 코흘리개, 울보, 점박이 등 별로 좋지 않은 수어이름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져 긍정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수어이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수어이름은 언어의 경제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어 이름을 수어로 표기할 경우 지문자(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쓰는 기호)를 사용하여 한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한눈에 이름을 가진 이의 특징을 나타내기 어렵다. 

그래서 농인들은 한국어 이름 대신에 간결하면서도 한눈에 대상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는 수화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어 이름보다 수화이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다보니 친한 사이라도 한국어 이름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차별이 많이 줄기를 했지만 농인들이 겪는 차별은 여전하다. 이들이 겪는 차별을 줄이는데 수화통역이나 정보제공 환경의 확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것만으로 부족하다. 사회적인 서비스 확대와 함께 농인들이 가지는 집단 정체성이나 관습(문화)이 존중되어야 한다.  

농인들이 가지는 문화를 농문화라고 하는데, 농문화는 청각의 손상된 장애의 관점이 아니라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데서 출발하였다. 수어이름은 청인의 문화와 구별되는 것이며, 농인들이 가지는 문화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농인의 문화가 존중되고 장려될 때 농인들의 차별이 근본적으로 줄어든다.

시인 김춘수는 그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라고 했다.

우리도 그렇고 주변의 농인들도 각자 의미를 가진 꽃들이다. 그럼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김춘수의 시와 같이 몸짓에 불과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외된 이들, 특히 농인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필요하다. 이들이 사용하는 수어에 대하여, 복지환경에 대하여 말이다. 그리고 색다른 이름을 가지고 싶을 때 기초 수어라도 배워 수어이름을 만들어보는 것도 말이다. 이를 통하여 농인들도 각자 이 세상에 의미를 가진 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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