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n번방 26만 명”이란 혐오의 아우성과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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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n번방 26만 명”이란 혐오의 아우성과 공명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3.24 12:19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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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성착취 영상 판매 ‘박사방’의 운영자 조 모씨의 모습. 사진=SBS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성착취 영상 판매 ‘박사방’의 운영자 조 모씨의 모습. 사진=SBS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수십여 명의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 촬영을 강요하고 이를 수만 명에게 판매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 이른바 ‘n번방’ 사건이 시민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심지어 사건을 취재한 기자까지 추적해 협박하는 등 이번 사건은 양진호 웹하드 카르텔, 정준영 게이트에 이은 또 하나의 디지털 성범죄 게이트로 비교되고 있다.

미성년자까지 입은 피해 수준과 피해자들의 숫자에 대중은 경악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충격인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성착취 영상을 보고자 수백만원씩 돈을 내고 텔레그램 비밀방에 들어간 소위 ‘유료방’ 접속자 수가 최소 1만명에 이른다는 점이다. ‘무료방’ 접속자까지 추정하면 그 숫자만 수만명 대에 달할 규모다.

이런 가운데 비밀 채팅방을 통해 성착취 영상을 판매한 디지털 성범죄자 중 ‘박사방’의 운영자 조 모씨가 지난 16일 경찰에 검거됐다. 필자를 비롯한 온라인 여론의 절대다수는 모두 범죄자와 이용자들에 자비 없는 처벌을 가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트위터
사진=트위터

그런데 여기서 “n번방 이용자 수는 26만명”이라는 아우성이 갑자기 사건의 주요 논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경찰도 ‘박사방 이용자 수를 3만명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n번방 전문 취재기사에서 드러난 숫자로도 그만한 규모까진 나올 수 없다는 독자 분석까지 나온 상태다.

이 ‘n번방 26만명’ 주장의 기원은 지난달 14일 모 여성단체의 ‘텔레그램 성착취 대응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성명문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이 한마디는 n번방을 집중 보도한 일간지에서 여성계 권위자 모 교수의 비평과 버무려 ‘26만명의 루저들’이란 문장으로 기정사실화됐다.

이렇게 부풀려진 한마디는 그 숫자가 부정확·불확실하다는 비판마저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려는 동조자”라는 온라인식 ‘후미에(踏み絵)’로 온라인 여론에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이 아우성의 방점은 “‘한남’ 범죄자 26만명”이라는 혐오로 찍히고 있다. 단 5일 만에 251만명을 기록한 조 씨의 신상공개 국민청원에도 이 ‘26만명’ 아우성이 함께 적혔다.

이 아우성을 언론은 여과 없이 적었다. 정확한 비판보다 부정확한 공분이 조회수 갱신에 효과적이었다. 심지어 하루 남은 신상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 결정마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모 공영방송은 조 씨의 신상을 공개해 이목을 끌어 모았다.

사진=성매매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사진=성매매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언론에 의해 고조된 아우성은 단 수일 만에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회원 전원을 조사하라”는 화답으로 돌아왔다. 4월 총선을 앞둔 만큼 역대 국민청원 답변과 비교할 때 이례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정치권은 이 기세를 타 관련된 화제성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공분을 가장한 혐오의 아우성을 황색언론과 정치권이 공명했고, ‘개혁적’이라는 정치 이미지로 소화됐다.

이 며칠 사이 혐오의 아우성과 공명으로 본 수혜자는 누구일까. 살아있는 권력이 자신들의 아우성에 화답했다는 ‘호가호위(狐假虎威)’적 혐오 집단일까. 그 아우성을 여과 없이 써내고 이목을 휘어잡은 황색언론일까. 아니면 ‘시의적절’한 화답으로 표심을 자극한 정치권일까.

최소한 대통령의 이례적인 직접 발언으로 범죄자 처벌에 대한 기대심은 모아졌다. 그런데 이 절정이란 클라이막스가 과연 정의로운 결말을 만들지도 의문이다. 희대의 버닝썬 피의자들 상당수는 잇따른 무죄 판결을 받고, 일부는 유유히 군에 입대하기도 했다. 버닝썬에 쏟아 내리던 아우성이 지금은 마치 원래부터 없던 모습이다.

불과 한 달 전 벌어진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생 입학 반대 사태로 시민사회는 인종차별주의에 버금가는 혐오 페미니즘의 민낯을 마주했다. 이제는 ‘n번방 26만명’이란 혐오의 아우성과 공명이 어떻게 여론과 정치에 악용되는지 체감하고 있다. ‘곰 같은 여우들’과 ‘여우같은 곰들’의 하울링(Howling)만 난무하는 춤판이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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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20-05-09 00:06:20
읽어보고댓글들써라 좀

27만명 2020-03-27 17:54:58
우리나라 창녀수가 27만명이라는데 혹시?

작작해라 2020-03-26 08:19:50
그놈의 26만명 타령 진짜 가짜뉴스에 신물난다. KBS도 뉴스에서 26만명이라고 하고 있더만ㅋㅋㅋ
팩트체크 안하냐 공영방송 새끼야

기레기 새퀴 2020-03-25 10:19:33
기레기 새퀴야, 너 hoxy.....???????????

ggg 2020-03-24 18:43:26
기자님 속시원합니다. 화이팅! 유튜브도 잘보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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