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여의도에 도척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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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여의도에 도척이 나타났다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0.03.2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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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잡’ 정치꾼, 투기꾼, 범죄자들의 금배지 행렬
도척의 성·용·의·지·인의 ‘5대 덕목’이 무색
주장환 논설위원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누더기 선거법’에 편승해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로 여의도는 난장판이다. 전문가를 발탁해 다양한 민심을 국정 운영에 반영해보자는 비례대표제는 이제 금배지에 눈이 먼 ‘듣보잡’ 정치꾼, 제 입맛대로 선거법을 뜯어 고친 사람, 투기꾼 혹은 범죄자들에게 도둑 맞게 생겼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을 펴든다.

≪장자≫가 눈에 들어온다. 장자, 인류에게 희대의 ‘통 큰’ 선물을 한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는 무궁하며 무진하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가 뒤엉켜 뛰논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있다.

‘도척’이란 희대의 괴도가 있었다. 서양으로 치면 ‘괴도 뤼팽’과 비견할 만한데 잔인함으로 치면 뤼팽은 ‘새발의 피’였다. 아무튼, 도척이 어느날 졸개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뭇 의미심장하다. 졸개가 “도둑질에도 ‘도(道)’가 있느냐”고 물었다. 도척이 유식한 티를 내며 도둑 비즈니스의 ‘5대 도’를 이야기 했다. 도둑이 되기위해서 갖춰야 할 사업 요령인 셈이다.

첫째, 물건을 훔치려 할 때, 어떤 값어치 있는 물건이 어느집, 어느 곳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이것을 성(聖)이라 한다. 둘째, 도둑질 하러 몰래 들어갈 때 맨 앞에 서야 한다. 이것은 용(勇)이다. 셋째, 다 털고 나올 때는 동료들을 앞세우고 자신은 맨 뒤에 있어야한다. 이것이 의(義)이다. 넷째, 도둑질을 하기 전에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 미리 예견하는 머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지(智)다. 마지막 다섯째는 훔친 물건을 똑같이 나누는 자세다. 이것이 인(仁)이다.

이 5대 도는 사실, 도둑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장자는 어쩌면 당시는 물론 오늘날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도척의 입을 빌려 에두른 것일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잘못 이해하면 도척이 무슨 뛰어난 성인이라도 된 듯 여길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분칠하고 예쁘게 포장해도 도둑질은 도둑질이다. 진정한 성(聖)·용(勇)·의(義)·지(知)·인(仁)의 의미를 훼손시켰을 뿐이다. 이 모두는 도둑들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나쁜 일을, 부끄러운 일을 하면 어떤 명분을 앞세우더라도 나쁘고 수치스런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도척이 이런 덕목을 잘난척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도둑질이 근본적으로 수치스러운 짓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옳지 못한 일을 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것, 그것이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치기는커녕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 야루(野陋, 속되고 천함)한 짓은 일시적으로는 불행을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르나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게 공자의 금언이기도 하다.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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