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로나19 여파에 고개 드는 '집값 담합'…"명확한 단속 가이드라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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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코로나19 여파에 고개 드는 '집값 담합'…"명확한 단속 가이드라인 필요"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0.04.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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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부동산 시장 급매물 등장에 '가격 하락 우려' 담합 
정부 단속 강화…'아파트=맛장수, 부동산=맛동산' 은어 등장
신고센터 운영에도 신고절차 까다로워…실효성 '의문'
코로나19 여파에 가격 하락을 우려한 일부 단지에서 가격 담합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양재천을 바라보는 타워펠리스로 본문 내용과는 무관함. 사진=김도훈 기자
코로나19 여파에 가격 하락을 우려한 일부 단지에서 가격 담합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양재천을 바라보는 타워펠리스로 본문 내용과는 무관함. 사진=김도훈 기자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등으로 매수 심리가 위축되면서 부동산 시장에 급매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급매물 등장에 따른 집값 하락을 우려한 일부 단지에서는 담합 움직임도 포착된다.  

단지 내 현수막이나 엘리베이터에 '일정 가격 이하로 집을 팔지 말자'는 공고문을 붙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담합 움직임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난 2월21일 집값 담합을 근절하기 위해 개정된 부동산거래신고법과 공인중개사법이 시행됨에 따라 정부는 한국감정원에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상설조사팀을 신설했다. 

또 국토부를 주축으로 경찰·검찰·국세청·금융감독원 등으로 구성된 '부동산시장 불법행위대응반'도 활동을 개시했다. 

정부의 감시망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일부 단지 엘리베이터에는 과거 노골적으로 일정 금액을 제시해놓고 '해당 가격 이하로는 팔지 말자'던 공고문의 내용이 바뀌었다. 

'알고 팝시다'라는 제목 아래 인근 단지와 해당 단지의 아파트 호가를 단순 비교해 놓은 것으로 수정된 것. 하지만 말이 비교지, 여기 나온 호가대로 매물을 내놓으라는 압력성 공지와 다를 게 없다. 

단속을 피하려 커뮤니티 별 채팅방의 인증을 강화하거나 주기적으로 채팅방을 옮겨 증거를 없애고 부동산 강연을 빙자해 담합을 모의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정부의 단속망이 유튜브와 인터넷 카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까지 손을 뻗치자 빗장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 모양새다. 

정부는 한국감정원에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사진=한국감정원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센터 캡처
정부는 한국감정원에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사진=한국감정원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센터 캡처

특히 '아파트=맛집, 부동산=맛동산·깡시장' 식의 은어도 생겨났다. 현장방문은 '기행'으로, 매물은 '재료'로, 전매제한은 '유통기한'으로 바꿔부른다. 아파트 브랜드에도 암호가 생겼다. 래미안은 에버랜드, 자이는 GS칼텍스, 아이파크는 앙팡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정부가 단속을 강화한 취지는 부동산 시장의 교란행위를 잡기 위해서 였지만 오히려 불법행위가 더욱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어 진행될 가능성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암호명으로 대화를 하는 단지나 부동산 관계자 중에는 담합과는 거리가 먼 일반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정부가 '부동산'과 관련된 모든 상황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자" 정상 대화조차 숨어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 

또 한국감정원에 설치된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센터(이하 센터)'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커뮤니티 내에서 집값 담합 등이 이뤄지면 정부 단속반 인원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불법을 잡기 위해서는 신고자의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센터의 신고 절차가 까다롭고 신고자의 개인정보를 공개해야 함은 물론, 지자체로 조사 권한이 이관되는 과정에서 일부 지자체의 경우, 경찰서 진술 등의 번거로움을 이유로 신고자에게 신고 취소를 권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센터 신고 절차를 살펴보면 신고인이 센터를 통해 신고접수를 하면 센터는 확인 과정을 거쳐 증거자료 보완 등을 요청하고 요건이 충족되면 관할 관청으로 조사 및 조치를 요구한다. 

신고센터에 담합 행위 신고 시 신고자는 자신의 신분과 개인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센터는 공개하지 않아도 신고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미공개 시 조사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사진=한국감정원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센터 캡처
신고센터에 담합 행위 신고 시 신고자는 자신의 신분과 개인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사진=한국감정원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센터 캡처

이때 관할 관청은 수사기관에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를 고발하고, 그 결과를 센터와 피신고인에게 통보한다. 신고자는 결과를 센터에 의해 통보 받지만 이 과정에서 관할 관청과 수사기관의 조사에 임해야 하고, 신고 과정에서 신분공개를 수락해야 한다.  

센터는 '신분공개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있으며, 동의하지 않더라도 신고는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동의하지 않을 경우 추후 조사 또는 수사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신분공개를 하지 않으면 신고에 따른 조사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온라인상의 담합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신고센터만 만들어 놓았을 뿐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수사기관에 고발을 해야 하는 관할 관청에서도 불법성 판단이 쉽지 않아 보인다. 

또 신고자의 신분 및 개인정보 공개도 풀어야할 숙제다. 센터를 통한 온라인 신고에도 용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따로 시간을 내 가며 관할 경찰 조사에 임해야 한다면 신고자체에 소극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담합 철퇴라는 목적에 편입돼 불특정 다수를 모니터링하고 지나치게 규제 위주로 관리하기보다 '어느 수준까지 제재할 것인지'에 대한 후속적인 법률 검토와 함께 시스템 체계를 정비하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한다.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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