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배민’ 횡포에 맞선다는 정치권...문제는 독점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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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배민’ 횡포에 맞선다는 정치권...문제는 독점 그 자체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4.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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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풍자 만화가 조셉 케플러가 그린 미국 트러스트(기업합동) 비판 풍자화. 사진=조셉 케플러
미국의 풍자 만화가 조셉 케플러가 그린 미국 트러스트(기업합동) 비판 풍자화. 사진=조셉 케플러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음식 배달 전문 앱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의 수수료 요금체계 변경에 소비자와 소상공인, 정치권까지 들고 일어났다. 이것은 이변일까, 아니면 마치 곪은 상처가 끝내 터져버린 것과 같을까.

독일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DH)의 배달앱 회사 요기요와 배달통은 한국 배달앱 시장에서 각각 33.5%, 10.8%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점유율 55.7%인 배민이 지난해 DH에 인수되면서, DH가 사실상 한국 배달앱 시장을 독점하게 됐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며 토종·민족주의적 이미지 자극으로 홍보해온 배민이 DH에 인수되자, 당시 배달 식당 점주 등 소상공인과 소비자는 독점의 폐해를 깊이 우려했다. 과점마저 담합의 우려가 깊은데, 100%에 가까운 독점은 대개 관련된 폐해가 일어나는 쪽으로 가기 때문이다.

이번 수수료 요금체계 변경이 바로 그것이라는 시민사회 비판은 이 예견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액제 서비스이던 수수료 체계를 ‘정률제’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모는 구조는 수수료 인상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비자가 배달 수수료 부담을 덜기 위해 직접 식당 전화번호에 주문하던 것마저 오픈서비스 방식으로 수수료를 부과하게 만들었다. 소상공인과 소비자 모두 배민의 수수료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다.

더욱이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외식은 줄어들고, 배달 수요는 전보다 한층 더 늘어나고 있다. 지난 5년 간 배달시장 매출이 3347억원이던 수준 9조원대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이를 감안하면 배민과 DH의 배달앱 시장 독점과 수수료 인상은 필연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배민·DH 인수합병 승인이 나기도 전에 이 같은 수수료 폭탄을 올린 것에 대해 여·야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여기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공공 배달앱’ 개발 방안까지 제시해 배민·DH에 정면으로 맞서는 등, 배민과 DH는 졸지에 역린을 건드린 모습이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은 1890년 카르텔(Cartel, 기업연합)과 트러스트(Trust, 기업합동)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반독점법의 효시인 ‘셔먼법(Sherman Act)’를 만들었다. 여기에 1914년 기업의 반독점 행위에 맞서는 ‘클레이튼법(Clayton Act)’, 연방무역위원회법 등을 잇따라 발효하는 등 미국은 독점 기업에는 강제분할·해체까지 시키며 100년 넘는 반독점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배민의 수수료 개편에 정치권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소상공인과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공 배달앱을 내놓을 것이란 목소리는 카드 수수료를 줄이기 위해 내놨다는 ‘제로페이’와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소비자와 소상공인의 제로페이 사용빈도는 거대 카드 기업들의 수준과 비교해 극히 적다. ‘공공 배달앱’이란 발상도 이처럼 똑같은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더욱이 상대는 100%에 가까운 독점 구조를 이루고 있다.

고인 물은 퍼내고 없애는 것만이 답이다. 고인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배민의 수수료 개편안 또한 고인 물에서 튀어나온 물방울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시장 개입’, ‘신사업 죽이기’란 프레임 씌우기로 초점이 흐려지기 전에,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미국처럼 독점에 대한 본격적인 수술을 진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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