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기구했던 한 농인의 삶,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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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기구했던 한 농인의 삶,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4.0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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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청와대 앞에서 열린 '장애인 권리 보장' 기자회견. 사진=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지난해 청와대 앞에서 열린 '장애인 권리 보장' 기자회견. 사진=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지난 해 이맘때 언론 기사다. 칠순의 농인(聾人)이 남편의 본처를 살해한 혐의로재판을 받았다. 사연은 이랬다. 그의 남편은 비장애인으로 본처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자식을 얻을 요량으로 나이 차이가 있는 그를 후처로 들였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그는 남편, 본처와 반평생을 같이 살았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학교는커녕 수어도 배우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결혼을 하고 나서도 주변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소외되었다. 그러다 믿고 의지했던 딸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는 희망을 잃기 시작했다.

남편이 죽은 후 본처는 틈만 나면 밖으로 나다녔다. 집안일은 그가 도맡아야 했다. 본처가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올 때면 그는 긴장해야 했다. 자고 있는 그를 깨우는 등 난리를 피우기 때문이다. 본처와 금전 문제로 갈등도 있었지만 소통이 잘 안되어 풀 수 없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누구에게도 하소연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불만이 쌓이고, 그는 결국 본처를 살해하고 만 것이다.

그녀가 농인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본처가 수어라도 한마디 배웠더라면, 아니 먼저 마음을 열었더라면... 하지만 이런 것들은 ‘가정’에 불과하다. 과거형이며, 현재에도 내재해 있는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박인아 등(2016)의 연구는 이러한 문제가 특정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에서 농노인들은 “자식이 있어도 지지를 받을 수 없고, 의지하던 가족에게서 버림받으며, 이용당하기도 하여 가족에 대한 정을 그리워하면서 외롭게 살아가고”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인과 비장애인이 결혼하는 경우 소통이 어려워 늘 두꺼운 벽을 안고 살아왔다. 자녀들과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살되 섬처럼 고립된 이들이 많았다. 

시대가 흘러 농인에 대한 인식도 나아졌다. 그럼에도 농인들이 겪는 가정 안에서 어려움은 여전하다. 지난 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를 보면, 농인들이 가족들과 수어가 아닌 구어(口語)와 필담으로 대화한다는 비율이 43.8%나 된다고 한다. 수어로 가족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을 자주 들었다. 뜻을 이루려면 가정이 편안해야 한다고 말이다. 가정이 편안해야 사회나 국가에 나아가 뜻한 바대로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한 말이리라.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평안하지 못한 농인들의 가정사는 농인 개인을 넘어선다. 농인들의 가정으로부터 받는 소외나 차별은 사회문제, 국가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하여 우리나라에는 몇 개의 법률이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한국수화언어법’ 등 장애인 관련 법률들이다. 그 가운데 “한국수화언어법”을 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인 등의 가족을 위한 한국수어 교육, 상담 및 관련 서비스 등 지원체계를 마련’ 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법률들이 올바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칠순 농인의 살해사건은 개인의 불행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문제라고 봉합되어버리면 안 된다. 가정만이 아니라 주변인들의 무관심도 차별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를 정책적으로 지원하지 못한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이런 불행들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먼저 가정에서 농인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이러한 시각은 사회로 확장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무한 책임을 져야 할 국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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