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우리는 투명한 '스티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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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우리는 투명한 '스티커'입니다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0.04.0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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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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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꼭 말을 해야 하나요?' 

네,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럼요! 눈치에 너무 의존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이를 테면 간단한 것일지라도 상대에 대한 고마움은 직접 말해줘야 이쪽도 편하고 베풀어준 저쪽도 ‘고마운 게 이런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됩니다. 싫을 때 싫다고 하듯 고마움도 확실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아들을 장가 들인 친구가 얘길 했습니다.
“그놈, 신접살림 할 아파트 전세를 내가 마련해줬거든. 그런데 아무 말이 없더라구.”
“무슨 말?”
“내가 애비지만 고맙다고, 에... 눈물까진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겠어?”
“속으론 다 알고 있겠지 뭐.”
“바로 그거야. 슬그머니 부아가 나더라구. 그래서 말했지. ‘얌마, 큰돈을 마련해 준 거야. 너, 내게 감사하단...뭐 그런 생각도 안 드니?’라 했어.”
“뭐래?”
“싸웠어. ‘속으로 그렇게 알고 있는데, 굳이 말씀을 하시고 그러세요?’라 하더라니까!!”

섭섭함을 넘어 괘씸한 생각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들에게 고맙단 치사 못들은 제 친구 말입니다.

한 사람이 바쁜 일로 서둘러 차를 운전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에 가는 차가 꿈틀대는 것이 거의 굼벵이 수준이었습니다. 경적을 울리고 상향등을 켜서 깜빡여도 속도 낼 생각은커녕 오히려 더 느려터지게 갔습니다.

뒤의 운전자, 마침내 자제력을 잃고 어렵게 앞지르기를 하면서 창문을 열고 한 마디 짜증을 부릴까 하는 찰나, 뒤창에 부착된 작은 스티커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장애인 운전자입니다. 조금만 참아 주세요. 죄송합니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마음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운전자는 금방 마음이 차분해지고 조급함도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그 차와 장애인운전자를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약속 장소에 다소 늦게 도착한 운전자는 일행들의 지각에 대한 힐난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차에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았다면, 내가 참을성을 발휘했을까? 빨리 비키라고 더 심하게 빵빵거리며 욕까지 하지 않았을까...?’

그렇습니다. 겉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사연이 사정이 있는 사람이 먼저 알게 해줘야 합니다. 말 안 해도 알 수 있지만, 꼭 다 그러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저마다의 등에 붙어 있는 투명한 스티커입니다. 어쩌면 영혼의 외침 같은 것을 읽지 못한 채 섣불리 판단하고 쉽게 섭섭함을 토로하거나 분노를 내보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스티커들 눈에 다 보이고 귀에 다 들리던가요?
<저는 오늘 일자리를 잃었어요.>, <큰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우울증으로 좀 괴롭습니다.>,
<이혼을 했습니다.>, <연인과 헤어졌어요. 기분이 별로네요.>,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수도와 전기가 끊겼습니다.>,
<아이가 시험에 떨어졌어요. 미소 짓기가 힘들어요.>,
<지금은 절 그저 껴안아 줄 사람이 필요해요.>,
<임대료를 못 내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는 쉽게 보이지 않는 영혼의 구호 같은 것들을 이마나 등에 붙이고 다니는 고독한 전사들입니다. 그런 게 있나 잘 살필 일이지만, 상대가 바로 읽지 못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말을 좀 해줘야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언제나 물러갈라나요...?!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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